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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나무의 목울음
  • 호남매일
  • 등록 2022-10-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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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식 시인·작사가


‘드르륵’ 창문을 여니 분재盆栽들이 얼른 안겨온다. 기상과 함께 우리들의 문안인사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볼수록 귀여운 녀석들이다. 배 아파 낳지 않았어도 자식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애잔한 마음이 꿈틀거린다. 우리의 만남은 어느 새 그렇게 반환점을 넘어섰다. 푸르른 날 선배의 소개로 만나 반백을 뒤로하니 참으로 먼 길을 함께 왔다.


분재는 창작예술이다. 구입하면 쉽겠지만 거기엔 애정이 없다. 분재는 오랜 친구처럼 희로애락의 삶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 했나보다. 각자의 격에 맞는 아름다움을 뽐낸다.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이 건 이래서 좋고 저 건 저래서 좋다. 그러기에 애첩은 줘도 분재는 못 준다는 말이 있는가 보다.


또한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측은하기도 하다. 수형(樹形)이 결정되면 대 수술을 하게 된다. 자르고 휘고 비틀기도 한다. 동여매고 약도 발라준다. 인간이 바라는 아름다움을 위하여 한격 높은 수준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여길 봐라. 저길 봐라. 고개를 바로하고 턱은 올리고 팔은 내리는 듯 살짝 올리고 몸은 가볍게 틀고. 그렇지 좋아요. 입술은 지그시 다물어 미소를 머금고. 발은 힘 있게 꼬아서 의젓하게 앉아야지. 화장은 물론 마사지도 해준다.


몸짱 얼짱이 이렇듯 만들어지면 다이어트과정을 밟는다. 비만은 절대 금물이다. 언제나 간드러진 팔등신이어야 한다. 아니면 여지없이 그에 채찍과 형벌이 따른다. 굶기기도 하고 유배도 보낸다. 너는 왜 엉뚱한 짓하고 있어? 어깨는 들고 팔은 내리는 듯 올리라 했잖아. 말귀를 알아들어야지. 넌 손들고 한쪽에 서 있어. 너는 뙤약볕에 썬팅 좀 하구. 너는 그늘에 가서 자숙 좀 해. 뭘 잘못 했나 반성하라구. 옆 친구를 보란 말이야. 얼마나 보기 좋아 그림 같잖아.


오랫동안 집을 비울 경우 허겁지겁 달려가 안색부터 살핀다. 대부분 잘 버티어 싱싱하게 살아줬지만 개중에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녀석도 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숨을 거둔 녀석도 있다. 가슴이 아프다. 좀 더 챙겨줬어야 하는데 무엇이 바빠 그러지 못했다. 엎질러진 물인 걸. 어떤 위로가 이 아픔을 대신할 수 있을까? 녀석의 시신을 거둘 때는 속이 꽉 매인다.


그간 나눈 정에 감사하고 영혼을 위로하며 작별을 한다. 만남의 깊이만큼 아픔도 다르다.


깨달음이 문득 나를 찾아왔다. 분재에 심취하여 그 창조자임을 자부했던 내가 악랄한 포획자요, 독재자였다. 급한 마음으로 그들 중에 몇은 산채를 하였다. 험산 준령도 마다하지 않고 넘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하는 거라 했는데 그걸 무시한 무뢰한이었다. 보쌈한 것이다. 백인들이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그물로 총칼로 잡아오는 거나 뭐가 다른가.


오직 나만을 위한 기쁨조가 되어주길 바라며 그들을 착취하였다. 산토끼의 초롱한 눈망울이 얼마나 보고팠을까? 광야를 달려온 훈풍이며 눈비에 두 볼을 얼마나 비벼보고 싶었을까? 철창에 갇힌 구관조나 앵무새로 살아왔다. 이 죄얼을 어찌 감당하랴, 그들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삼천궁녀의 춤사위가 보인다. 북녘 삼부자三父子 앞에서 하늘거리는 인민배우의 몸짓도 보인다.


애들아! 이제 안녕이라고 말해 주렴. 어서 네 하늘 네 땅 네 형제의 곁으로 가거라. 슬픈 만남 연이 되어 함께 한 날들과 너희들 앞에 고개를 숙인다. 동구 밖 바람골에서 모셔 온 늙은 자귀나무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통곡이었다. 그 눈물 내게도 흘러들어 돌가슴을 촉촉이 적셔 내린다.



우리들의 밀어


- 분 재



너 아니면 내가 없고 나 아니면 네가 없는


인연줄 묶임 되어 맵고도 다순 정


다지며 예 왔구나


나, 아니면 어찌 살까


너, 아니면 어찌 살까



내 몸처럼


내 살처럼


아파도 했다


내 목숨 버림같이 슬퍼도 했다



외침이 없다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웃음이 없다고 기쁨이 없는 게 아니었다


눈물이 없다고 아니 우는 것 아니었다


흐느낌이 없다고 슬픔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눈으로만 말하는 우리들 밀어


지금도 강같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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