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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만남
  • 호남매일
  • 등록 2022-10-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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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식 시인·작사가


시市지역에서 십년이면 군郡 지역으로 전보되던 시절였다. 그 덕으로 잠시 군지역사람이 되었다. 시에서 군까지는 기차로 다시 학교까지 사십여 분은 자전거에 몸을 맡겼다. 이렇듯 이어지는 출퇴근은 참으로 힘든 로정였다. 사는 게 이런 것인가? 여러 번 외이면서 황혼을 바라보곤 하였다. 포장이나 됐으면 좀 좋으랴, 트럭이 막심 쓰고 달리면 그 먼지를 몽땅 뒤집어쓰고 들마시며 다녔다. 언덕은 왜 그리 많고 멀었던지.


기차에서 내려 읍내를 지나고 시골길에 접어들어 한참을 가다보면 동네에서 빠져나오는 고샅길에 이른다. 헉헉대며 언덕배기를 올라가자면 먼발치 촌락에서 점점이 다가오는 한 여인을 영락없이 만나곤 하였다. 그녀는 누구의 챙김이 없어도 결코 섭섭해하지 않고 넘보지 않고 묵묵히 귀진자리를 제자리라 고집하는 순박한 찔레꽃 같아 보였다. 화려하거나 멋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다소곳한 몸매는 알 듯 모를 듯 수줍음이 넘쳐나 무딘 마음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어렵던 시절 이런저런 상념에 붙들려 굴러가는 바퀴에 삶을 얹고 달리다 기척에 고개를 들면 그녀다. 가까이서 마주하니 훔쳐봤던 모습보다 훨씬 청순하고 곱다. 티 없이 맑은 눈빛이며 해맑은 인상은 살기에 기진한 삶의 응어릴 순간 녹여주고 먹구름을 날려 보낸다.


아쉬운 눈길을 돌리려는 참인데 어렴풋 가느다란 미소가 새어나온다.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멋쩍은 모습으로 정신없이 페달을 밟았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분명 나에게 보내온 무언의 메시지였다. ‘에그 무딘 놈, 얼마나 무색했을까?’


그런 확신이 서니 촌벽의 햇살이 더욱 눈부시다. 이처럼 쾌청한 날은 요즘 들어 없었던 것 같다. 학교까지 요철길이 평지길 같았다. 몇 시간을 거듭 가고도 남을 힘이 넘친다.


종일토록 출근시간만 기다려진다. 마음은 콩밭에만 있었다. 연일 그 시간 그 자리에서의 만남은 분명 예사 인연이 아녔다. 상서로운 그 무엇이 시작되고 있음이었다. 자꾸만 진한 의미를 부여한다. 어딜 다니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음은 더 큰 설렘으로 다가왔다. 그녀도 같은 마음이길 바라면서.


다음날도 이은상 작시 현제명 작곡 ‘그 집 앞’을 흥얼거리며 가사의 주인공이 되어 달렸다. 그녀도 여느 때처럼 다가오더니 다소곳이 다문 입술을 다시 여미며 눈인사를 건네준다. 이번엔 목례까지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라는 인사말은 건네지 않았지만 그보다 많은 말들을 우리는 주고받았다. 하루하루가 감사였고 만남이 없는 날은 텅 빈 하루였다.


가을로 접어들자 이웃 학교와 오가며 친선배구대회를 하였다. 그간 줄곧 져 오던 강 선배는 자기 학교가 모처럼 이겼다 하여 기분이 고조되었다. 간단한 여흥 끝에 내게 다가오더니 말문을 연다.


“어이, 동생 내 말 좀 들어봐”


듣자하니 그녀와의 만남이었다. 그래서 내일 만나면 차 한 잔 나누자고 꼭 청해보겠다는 것이다. ‘아, 이럴 수가’ 어쩌면 그렇게 나와 같은 사연일까? 선배는 도보(徒步)였기에 나와는 약간의 시간차가 있었을 뿐이다.


‘그래요? 저도 그랬는데’ 하며 풀어놓고 싶었지만 남의 잔칫상에 재 뿌리는 것 같아 참았다.


그 후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읍사무소 직원이었다. 자기 고장에 와서 수고하시는 외지外地 선생님들임을 먼저 알고 깍듯이 예우한 것이다. 예절생활의 일부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녔다. 그러나 못 말릴 두 남자는 자기들 멋대로 초원에 양옥집을 지으며 ‘방방’ 뛰었다.


그 후 다소 반감은 되었지만 힘들 때 내 마음을 쓸어준 그녀의 고운 미소가 그립다. 이따금 그날의 언덕배기를 오른다.




-회상




헤프게 버린 세월 주어담는 어리석음


그 모습 부끄러워 일상을 갈고 엎는데


물 쓰듯 쓰고 남는 건 세월이라 했었네



알고도 모르는 척 모르고도 아는 척


살아온 면면 앞에 잊고 싶은 삶이였는데


해질녘 타는 노을에 더 붉어진 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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