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가을이 가는 날 맨드라미 꽃씨를 작은 병에 담아두었다. 내년 여름에 마당에 예쁜 맨드라미 피는 꽃길을 가져보려 한다. 작은 씨앗들은 내 손을 떠나 바닥에 쏟아진다.
아마 내년 우리 집 마당에도 꽃밭이 아름드리 오늘의 대화를 기억할 것이다.
올해는 감이 풍년인가 보다. 여기저기서 한 아름 감을 보내왔다. 많은 감을 여기저기 나누어도 바구니 가득 감이 찼다. 어쩔 수 없이 밤새 감을 깍았다.
깎은 감은 실을 묶고 처마에 매달았다. 주렁주렁 매달린 감은 가을의 사연을 충분히 담았다. 붉게 매달린 감을 보니 부자가 된 듯하다.
어릴 적 가을날 감이 풍성하지 않았다.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밤이면 엄마는 붉은 홍시를 단지에 담아 오셨다. 엄마가 항아리 속에 넣어둔 홍시가 하나둘 사라 질 때면 안타까웠다.
집안 식구들의 간식이 사라져 가면 이제 무엇으로 이 겨울을 보내야 하나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시골길을 가다보면 쪽빛 하늘에 붉은 감이 마음까지 풍성하게 해준다. 감이 풍년이 올해 일손이 없어 감을 따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마을 할아버지는 “올해는 까치감이 넘치네.” 하시는 언어에 안타까움과 나눔의 마음이 엿보인다.
서울에 사는 벗이 고향에 내려온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벗은 해마다 11월이면 시골집 감을 따러 온다. 하루 종일 감을 따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고 나면 삼일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그래도 매년 올해 이 감을 어쩌야 하나 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휴가를 내고 시골로 향한다고 한다.
벗은 감을 따서 곶감 만들 감, 장아찌 만들 감을 분리한다. 어머니와 함께 항아리에 떫은 감을 넣고 소금을 뿌린다. 감은 석 달 동안 익어 맛있는 감 장아찌가 된다.
벗의 어머니의 감 장아찌는 언제나 담백하고 맛이 있다. 특별한 양념을 하지 않아도 봄이면 가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밑반찬이 된다.
올해는 어머니의 비법을 배우려고 감·소금·물의 비율을 기록해 두었다고 한다.
벗의 어머니는 감꼭지를 따지도 않는다. 그리고 소금물도 끓이지 않는다. 감을 씻어서 말렸다가 항아리에 담는다. 굵은 소금을 뿌린다.
그 위에 감잎을 올려놓는다. 감잎을 덮는 이유는 곰팡이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엄마 감 장아찌는 왜 이렇게 맛있지.” 라고 물으면 “물맛이지. 그리고 감이 맛난 감이라 그래. 단단하고 검은 무늬가 있는 감이 맛 나지야.” 벗의 어머니의 언어에는 감칠맛이 난다.
벗의 어머니의 손 맛 덕에 필자도 그 맛난 장아찌를 해년마다 먹을 수 있어 참 좋다.
붉은 감이 푸른 하늘 끝에 매달려 있다. 감이 풍성한 가을에는 감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겨울에 장독에 가득 채울 감을 생각하면 마음도 부자가 되는 듯하다. 벗은 올해는 해는 감이 많아 장아찌를 만들어 본다고 한다.
벗의 어머니의 레시피로는 맛을 못 낼 것 같아 장두 감을 뚝 뚝 썰어 건조기에 잘 말렸다. 그 곶감을 고추장에 버무리면 감칠맛이 나는 장아찌가 된다. 항아리 가득 고추장 감 장아찌를 만들었다고 한다. 침이 꿀꺽 넘어간다.
감은 참 고마운 과일이다. 봄날에는 감잎차, 여름에 장아찌, 가을에는 붉은 감, 겨울에는 곶감으로 감을 만날 수 있다.
감은 우리네 민족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동화속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곶감이다. 그 만큼 맛이 있으며 귀한 것이 감이었다. 흔하면서도 귀한 과일은 바로 우리의 삶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푸른 하늘에 붉은 감이 열려 있는 가을 산하를 자동차를 달리면 마음이 풍성해 진다.
붉은 감에 많은 이야기들이 둥실둥실 열릴 것만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감이 풍년이 된 올해는 감을 넉넉히 저장해 두어야겠다.
홍시로 먹고, 곶감으로 먹고, 말려서 먹고, 장아찌를 담가서 먹고 감 이야기를 훨훨 날려 보낸다.
벗이 보내온 붉은 감 한 개를 든다. 빠른 손을 돌리면 감을 깍는다. 오렌지 선홍빛 붉은 감이 곶감이 다 되어 말릴 때쯤이면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이 우리 곁에 당도할 것이다.
그때쯤 입안에 가득 곶감 향기를 담아볼 생각을 하며 행복한 가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