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8 광주·대구 하계 아시안게임(AG) 공동유치를 위한 억대 연구용역이 혈세낭비 논란을 낳고 있는 가운데 사실상 손을 놓다시피 한 발주처와 부실한 하도급이 빚어낸 엉터리 용역이라는 지적이다.
조(兆) 단위 예산이 투입되는 국제행사임에도, 대회 유치 로드맵부터 허술했고, 시금석 내지 초석이 될 첫 연구 용역은 총체적으로 부실했다. 광주시의회는 해당 용역을 예산낭비 사례로 보고, 연구비 회수와 용역 전반에 대한 감사 요구를 검토중이다.
◇개최지 선정 로드맵부터 \'허점\'
\'2038 AG 공동유치 추진 상황\' 보고서 등에 따르면, 광주시는 대한체육회와 문체부, 기획재정부 심의를 거쳐 2024년 대구시와 공동명의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에 유치신청서를 공식 제출하고, 이어 OCA 현지 실사를 거쳐 같은 해 2038년 개최지가 확정·발표된다고 밝혔다.
\'2024년 개최도시 확정\'을 대전제로 단계별 시한도 확정·공지됐고 이 과정에서 \"의회 동의가 없으면 한 발 짝도 나아갈 수 없고 모든 게 무산된다. 시간이 촉박하다\"며 의회를 압박했다.
그러나 \'2024년\'은 시가 임의대로 만든 로드맵이었고,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시의회는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허위 로드맵\'을 질타했다. 실제 아시안게임은 통상 개최연도 6∼10년 전에 OCA 총회에서, 올림픽은 8∼10년 전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결정되는 게 통례다.
◇24명 투입된 억대 연구 용역 \'엉터리\'
공동유치 협약 체결 후 첫 사업은 \'기반조사와 경제 파급효과 분석\' 연구용역. 의회와 정부 동의를 위한 첫 과제였다. 두 도시가 8000만원씩 모두 1억6000만원을 들여 광주전남연구원과 대구경북연구원에 의뢰해 10개월간 진행됐다. 두 연구원과 대학교수, 모 스포츠연구소까지 3∼4단계 하도급에 무려 24명이 투입됐다.
지난 2월 1차, 4월 2차, 6월 최종 보고회를 거쳐 지난 8월 170쪽 분량의 최종보고서가 완성·납품됐으나 절차상, 내용상 하자와 편법이 적잖아 총체적 부실 용역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책과제 위탁사업을 보조금 사업으로 정산한 것을 두고는 \"과업 지시나 용역심사를 피하기 위한 편법\"이라는 지적이 나왔고, 용역의 핵심인 설문조사와 경제성 분석은 엉터리로 드러났다.
특히 설문의 경우 서로 다른 기준과 조건으로 광주 따로, 대구 따로 조사한 것을 단순히 합산(sum)하는 중대 오류를 범했고, 취업유발 인원과 경제파급 효과, 총파급 효과 등도 엉망으로 산출됐다.
설문을 수행한 조선대 스포츠과학연구소 측도 \"샘플링, 시기, 방법, 정보누적 횟수가 모두 달라 합산하면 안된다\"고 분석 오류를 인정했다. 광주전남연구원은 경제성 분석과 관련 \"엑셀파일을 잘못 끌어다 썼다\"고 자인했다. 광주지역 취업유발 효과가 무려 96만 명으로 산출한 점도 부실의 단적인 근거로 제시됐다.
선수촌 운영비와 도시 간 이동수송비, 공동조직위 운영비 등은 줄줄이 누락됐다. \'천문학적 적자 오명\'을 쓴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타당성 조사를, 그것도 16년 전 작성된 보고서를 짜깁기한 흔적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총사업비(1조817억원) 중 운영비는 2038년, 시설비는 2022년을 기준으로 달리 산출한 뒤 두 결과값을 합친 점, 산출 근거도 운영비는 2014인천대회, 시설 개·보수비는 2027 충청권 하계U대회 타당성 조사를 각각 기준으로 삼아 \'고무줄 예산\'의 빌미만 낳았다.
대회 엠블렘도 공모가 아닌 모 광고업체에 60만원을 주고 제작했음에도 \'예시\'라는 표기도 넣지 않았다. 종목유치안도 공동개최 종목임에도 죄다 광주지역 경기장만 표기했다.
◇사실상 손 놓은 행정, 손 뗀 연구원
광주전남연구원 소속 연구원이 8명이나 연구진에 포함됐음에도 현황분석 외에는 사실상 한 일이 없고, 허점 투성 보고서에 대한 검수도, 내부 점검 과정도 허술했다.
발주처인 광주시는 3~4단계 하도급 용역이 이뤄졌음에도 관리감독이나 최종 확인 작업에 소홀했다. 사전타당성 조사 용역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었음에도, 연구결과는 행정안전부 정책연구관리시스템(프리즘)에 등재조차 되지 않았다.
의회에 동의안을 제출할 시점에도, 공동유치 준비위원회 명단은 전직 시장과 시의회 의장들로 채워졌고, 심지어 사망한 인사까지 포함돼 논란과 비난을 자초했다.
\"업무상 과실 아니냐\", \"연구원이 브로커냐\"는 강도높은 지적이 나왔고, 시는 \"발주기관으로서 불찰이 있었다\", 연구원은 \"죄송하다. 필요하다면 용역비 회수도 검토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서울시가 지난해 4월 IOC에 2032년 올림픽 유치제안서를 제출, 국가적 부담이 커진 지 한 달여 만에, 그것도 대회 개최를 17년이나 남겨둔 상황에서 나온 전략이어서 추진 배경에 의문도 제기됐다. \'달빛철도 국가사업화를 위한 유인책이었다\' \'인사에 숨통을 트기 위한 카드였다\'는 의견 등이 이 과정에서 돌았다.
연구원 안팎에서는 \"언제부턴가 연구원이 발주처 눈치를 보고, 공직자들이 자체 소화할 수 있는 긴급과제성 용역이 수시로 내려오는 등 단순 용역기관으로 전락한 점도 부실 용역을 키운 근본적 요인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용역비 전액 회수, 감사 청구해야\"
광주시의회 이귀순 의원은 23일 \"총사업비가 1조원이 넘는 대규모 국제행사에 대한 연구용역이 이토록 부실하게 이뤄졌음에도 발주처인 광주시가 제대로 된 확인 한 번 하지 않았고, 연구원도 손을 놓다시피 했다. 심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시의회 행정감사에서는 AG 공동유치를 놓고 증인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연장 감사가 이어졌고, \"허위 로드맵\" \"부실투성이\" \"조작\" \"업무 태만\" \"짜맞추기\" 등 강도높은 지적과 함께 \"용역비를 전액 회수하고, (특정)감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이어졌다.
대구시의회 류종우 의원은 지난 17일 대구경북연구원 행감에서 AG 부실용역을 지적한 뒤 \"용역부터 튼실해야 계획이 흔들리지 않는다\"며 \"여러 대형사업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를 할 때 충분한 시민 의견 수렴을 통한 내실있는 연구가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