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식 시인·작사가
장모님, 이 어인 발걸음이시옵니까? 장모님의 참사랑 아직 목 타게 그리운데 맥없다 뿌리치고 그 먼 길 가시옵니까? 저희들의 응석부리 과했다 하심인가요? 다정히 잡아주신 그 손길 그 체온 아직도 따스한데. 선하신 환한 미소 가슴가슴 아련한데…
아니면 아니다. 섭하면 섭하다, 말씀 차마 못하시고 이 어찌 모르신 척 황망히 그 먼 길 떠나시옵니까? 코앞의 제 식구 제 자식에 넋이 나가 가시고기 장모님의 그 마음 헤아리지 못한 불효 어찌 감당하라고 손사래를 치십니다.
요 근자, 저희 집에 오셨습니다. 근동 갈비탕이 부드럽고 맛이 순하여 대접해 드렸지요. 그 때 제 손을 꼭 잡으시고 하신 말씀
“내(가), 사위한테 용돈 한 번 주고 싶어서 그래”
하시며 꼬깃꼬깃 접어두신 손때 묻은 돈 5만원을 제 손에 꾹 눌러 쥐어주셨지요, 받을 수 없다 거듭거듭 사양하니 “내 마음이야” 하시며 끝내 던져주고 가셨습니다.
장모님, 이 어눌한 칠십 사위 놈은 제게 주신 그 용돈에 잠긴 뜻이 무엇인지 이제 서야 알 것 같습니다. 이 불효, 저는 어찌하라고 이렇듯 잔달음으로 달려가시옵니까?
합하고 곱하여 곱절로 드리려 해도 치사랑 드릴 수가 없으니 저는 어찌 하라고 이런 중벌(重罰) 주시는지요.
장인어른 어느 날 갑자기 천국 가시고 삼십여 년 긴긴 세월,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아홉 자식 등에 업고 산 고개 오르시는 겨운 삶을 사셨습니다. 찬이슬 걷어차며 새벽마다 고샅걸음 억세게 하셨습니다.
시린 가슴 돌려놓고 매친 한을 내려놓고 이 길이 천국길이라시며 지성으로 다니셨습니다.
정결한 마음으로 한 올의 흩음 없이 두 무릎 꿇으시고 두 손을 모으시고 아홉 자식 빠질세라 하나하나 짚으시고 하늘 뜻 바라시며 눈물로 비셨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야 불거나 말거나 어머님의 새벽기도 그 발걸음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장모님 삶은 눈물의 삶이셨지요.
저 천공 꽉 차도록 통가슴 저리도록 울리는 찬송의 삶이셨고 깊디깊은 신앙의 샘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기도의 삶이셨습니다.
흥얼흥얼 찬송소리 목가도록 부르실 때 눈물은 강이 되어 절절히 흘렀나이다.
저 천국 찬송소리 우리 함께 듣자하며 언 땅도 녹일지어다, 옥토로 만드셨습니다.
비집고 새나오는 악귀를 자르시고 기도와 찬송으로 뜨겁게 물리치며 한 날도 소홀 할까 인고를 파고 갈아 내 안에 뿌린 씨들 피눈물로 가꾸셨습니다.
하늘 뜻 알길 없어 하늘을 우러를 때 남편의 십자가도 자식의 십자가도 ‘죄인이 예 있사오니 저 주소서.’ 하시었죠. 당신 짐은 돌려놓고 자식 짐 올려놓고 하나님께 조르실 때 장모님 그 기도가 하나님 전 상달되어 칠배나 더한 축복 주신 줄로 믿습니다.
생전에 지은 죄가 산만큼 크옵니다. 손발로 다 못한 효 피눈물로 쏟습니다. 장모님 천국 가시면 인연 없다 하소서.
얼마나 쏟아야 합니까? 얼마나 울어야 합니까? 놓쳐버린 풍선처럼 허망뿐인 모정인데 냇가에 묻어둔 사랑 비가 오듯 저립니다.
뻐꾸기 날만 새면 가슴 치며 우는 그 뜻 ‘내 불효 옹이 되었다 거저 듣지 말라’고 지성으로 타이름을 질정인 줄 저 모르는 줄자식들 하나같음에 얼마나 섭하셨는지요?
산보다 높은 산이 강보다 깊은 강이 내 어머니 품안인 걸 흘려버린 망각의 강, 조타수 없는 난파선 갈 곳 몰라 에돕니다.
장모님 그 살내음 눈물 적신 삼동이면 문풍지 목이 쉬고 지새는 달 잠이 들고 옹알이 노래가 되어 소쩍새 울어 일 때 가슴 치며 울겠지요. 저희들의 이 불효, 종신형 받사오니 천벌인들 두렵겠사옵니까?
장모님 천국 가시면 온갖 시름 놓으시고 영생복락 누리소서. 영생복락 누리소서.
-아들이 준 용전
아들한테 받는 용전 기쁨 중 기쁨인데
부실한 바닥살이 으밀아밀 펼쳐보니
네 효성 채찍이 되어 내 가슴을 치누나
있어도 못 드리는 이 슬픈 가슴앓이
뒤늦은 올리사랑 뉘 대신 받아줄까
어쩌랴 회억의 뜰에 버려진 이 충회衷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