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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전 어서 오시오"
  • 호남매일
  • 등록 2022-11-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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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식 시인·작사가


내일은 아내가 귀가하는 날이다. 김치며 찬거리 몇 가지를 가지고 며칠 전에 상경하였다. 공항은 아우성이건만 아내는 언제나 남의 이야기다. 집안일에만 충실한 우렁이 삶을 살다가 이따금 애들한테 다녀오는 걸 천하제일의 낙樂으로 삼는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매년 울 밖만 넘겨다보는 나로선 다행이지만 미안하고 측은한 마음이 왜 없으랴.


으레 그랬듯이 아내의 귀가 통지를 받게 되면 전날부터 비상이다. 평소에는 소 닭 보듯 사는 멋없는 남자라는 힐책도 받지만 마음까지 그런 건 아니었다. 자잘한 입챙김이 성미에 맞지 않아 못했을 뿐이다.


퇴직 후 어느 날부터 무례한 삶을 함께 일구어가자는 뜻에서 역할의 벽을 헐겠다고 자청하였다. 그 하나로 식사준비는 아내 몫이지만 설거지는 내가 하겠다고 나섰다. 한 때는 삼식이가 부러운 적도 있었지만 이제 내 끼는 내가 챙긴다. 인생 만절에 함께 늙어가며 그건 아닐 성 싶어서다. 작은 마음의 표현이지만 피차에 기쁨이 될 거라 믿는다. 나 또한 설거지하는 동안 편안히 앉아서 쉼의 시간을 보내는 아내의 모습이 보고도 싶고. ‘놔둬라, 하면서도 달려들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이런 저런 이야기로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워서다.


집 나가면 고생이란 말이 있듯이 자식들한테 가는데 어찌 기쁨만 있으랴, 그렇다면 우리들의 삶의 둥지는 바로 보금자리다. 밖엣 것이 제 아무리 돋아보여도 ‘그래도 내 집이, 그래도 내 남편 뿐이다.’ 라는 느낌과 안식을 기원하며 팔을 걷었다.


먼저 창문을 열어젖뜨리고 청소를 한다. 사나흘 묵은 공기며 냄새까지도 몽땅 바꾸어야 한다. 쾌쾌함을 무던히 싫어하는 예민한 후각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던져두었던 수건이나 양말이며 옷가지들은 빨아서 정리한다.


부엌은 내무사열대상 1번지다. 홀아비 냄새가 가장 묻어나는 곳이기에 신경이 더욱 쓰인다. 어찌 지냈나? 척 보면 안다 했다. 그러기에 더 집중 집중한다. 밀렸던 설거지는 물론 행주는 락스에 담갔다가 뽀얗게 빨아 말린다.


다음으로는 집안 분위기를 바꾸는 순서다. 수석이나 화분 또는 가구는 자리바꿈으로 새로움을 더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벤트 꾸밈도 생각해본다. 간이칠판에 ‘중전 어서 오시오’ 라든지 ‘당신의 입성을 진심으로 환영하오.’ 라든지 ‘그간 많이 보고 싶었오’ 등, 감정을 약간 튀겨서 표현한다.


일을 얼추 마치고 찻잔을 대하자니 때마침 불어오는 하늬바람이 마치 아내의 손길인 양 흐른 땀을 씻어준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지만 과연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둘지는 두고 볼 일이다.


처음 만났던 그 날의 해맑은 미소가 윤슬처럼 반짝인다.



-나의 길벗에게


십리 허 너덜겅을 맨발로 어이 왔소


마주 보고 상한 마음 빗금 치며 달래었소


심드렁 가뭇한 나달 정이 제법 도톰하오



추스름 몇 번였나, 새 사람 되긴커녕


그 어디 검은 피가 붉기가 쉬운 겐가


내 어찌 못할 입다짐 어리버리 뇌었는지



송신증 울화증도 세월 앞에 석이 죽고


옭매듭 시나브로 봄눈 녹듯 풀릴 것이


늦봄 다 가고난 후에 그 옳다 무릎 치오



끝 역에 설 때까지 엇가지 자르면서


남은 삶 홀로지기 울 밖으로 던지우세


새김질 연신하면서 가던 길 깍지 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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