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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마니
  • 호남매일
  • 등록 2022-12-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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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준 식 시인·작사가



퇴직은 광야에 내침이었다. 하루하루가 무료했다. 그래서 미리미리 준비하라 하였나보다. 허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내일 일은 내일, 오늘은 오늘 일에 충실하자는 것이 나의 신조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내심 어떤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무척 궁금하였다.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그러한 나에게 새길을 예비해 주셨다. 늘그막에 문단에 나가게 된 것이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뭘 믿고 나섰는지 나도 모른다. 그렇지만 감사하다.


해와 달은 바람처럼 지나갔다. 한 눈 팔지 않고 누빈 덕에 긴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몇 낱을 건질 수 있었다. 바라던 산삼은 아닐지라도 하나 둘 모아질 때마다 기쁨이요 감사였다. 그 설렘은 잊을 수 없다.


그것들을 다듬어 어설픈 밥상을 차려도 보았다. 누군가 ‘책을 낸다는 것은 나를 떠나는 것’이라 하였는데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그러나 ‘오답이 정답을 빛나게 한다.’는 말에 용기를 얻고 그 역할을 감당하기로 하였다. 칠삭둥이 팔삭둥이 미숙아를 쏟아놓은 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속언을 실천 중이다.


비록 모자라도 못났어도 내 배 아파 낳았기에 ‘그저 이것들이 세상에서 어찌 살지’ 하는 걱정뿐이다. 사랑을 받을지, 눈총을 받을지, 걱정과 떨림이 앞선다. 친정어머니의 심정이랄까 빈들에 팽개치는 것 같은 애련한 마음이다.


하지만 작은 소망은 있었다. 그것은 한 권의 시집에서 단 한 편의 시라도 ‘그래’ 하는 지극히 작은 느낌, 그 작은 의미 부여를 기대한다. 연약한 바람이다.


‘시는 언어의 영롱한 사리’라 했다. 내 영과 삶이 먼저 사리가 되어야 하겠는데 어 떻게 그 길을 갈 것인가?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집채만한 암벽이 순간순간 내 앞을 가로막지만 거침없는 내 발길은 결코 막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선채마니(산삼 잘 캐는 능숙한 심마니)가 부러워 심망태 둘러매고 휘파람을 불며 간다. 광야에 내쳐졌던 그 발걸음에 새 힘이 솟아난 것이다.



-어줍은 심마니



자르지 못했구나


사루지 못했구나


잔마다 그릇마다 넘치는 게 오만인데


심망태 걸머지고서 산을 넘고 넘는구나



산다고 다 삶이 아니듯 죽는다 다 죽음 아니듯


한다고 말이겠느냐, 쓴다고 글이겠느냐


네 무슨 족적이라며 벼랑길을 넘보나



심공에 자맥질한다 몽상에 허우적댄다


만절에 붓갈기 세워 미세기 삶 뒤지는데


실뿌리 치켜들고서 고래고래 외친다



웃고만 날들이 옹이가 될 줄이야


고통의 나날이 사리가 될 줄이야


사무사(思無邪) 물음에 운다. 낯 붉은 마음이여


(*사무사 :마음에 사악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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