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식 시인·작사가
요즘 어린이들은 참으로 영악하다. 어른 못할 말을 하고 어른 못할 몸짓을 한다. 볼수록 귀엽고 어찌 자랑스럽지 않으랴. 하나뿐인 자녀를 가진 부모에게는 더할 나위 없다.
이런 아이들이 가끔씩 이웃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적이 있다.
그러지 않아야 할 곳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들길처럼 누비고 소란을 피운다. 부모는 대견스럽고 자못 흐뭇한 표정이다.
그때마다 그 가정과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럽다. 조심스럽게 한마디 부탁을 하면 ‘당신이 뭔데 왜 남의 자식 기 죽이느냐’ 며 대들고 나선다.
남에게 피해를 줄 권리는 없는데 간섭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이 기 살리는 교육으로 잘못 알고 있다. 기(氣) 살리기는 방목이 아닌데 미숙한 아이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거나 또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다 보면 잘못된 습관이 고착화된다.
언젠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더 큰 요구를 받게 된다. 그 때 못 들어주게 되면 부모를 원망하고 성질과 행동을 자제치 못하여 사고를 일으키게 된다. 필요악의 존재가 여기에 있다.
3년간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석봉이를 불 끄고 시험해본 어머니는 그를 가차없이 돌려보낸다. 어찌 그 어머니를 자식사랑 없다. 하겠는가? 교육도 사랑도 절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범법자가 되거나 남에게 폐를 끼치는 사회의 낙오자가 되는 것은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다.
그 대부분은 천성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다. 고운 천성을 소유했으면서도 부모의 잘못된 편견과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를 통감할 때에 부모의 진정한 자녀사랑의 길이 보일 것이다.
어린이는 칭찬을 먹고 자란다. 기를 죽여서는 물론 안 된다. 잘하는 것을 찾아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게 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 교육이란 잘할 때 잘함을 챙겨주어 익숙하도록 하고 아닐 때 아님을 지적하여 거두도록 함일 것이다.
해야 할 때와 해서 안 될 때가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훌륭한 자녀로 기르려면 먼저 훌륭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
내 자녀를 염려하는 눈길에 감사하여야 한다.
이제, 내 눈에 드는 아이가 아니라 남의 눈에 드는 아이, 남이 부러워하는 자녀로 길러야 할 일이다.
-회초리
꿀릴 것 하나 없다, 등 밀어 세운 자식
정 맞아 날선 그 끝 가슴팍을 후비나니
한석봉 그의 어머니 내치심의 자릴 본다
내 좋아 띄운 자식 하나같이 눈엣가시
정 따로 기른 자식 언 가슴 데우나니
난 사람 든 사람이랴, 된 사람을 시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