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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듯, 푸른 바다를 안았다
  • 호남매일
  • 등록 2022-12-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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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한해를 정리하는 시간에 푸른 바다가 보이는 동해를 찾았다. 눈이 시리도록 시퍼런 바다는 그동안 지치고 힘들었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에 충분했다. 바다가 먼 곳에 사는 이는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겨울 바다를 보고 난 이후에 알게 되었다.


영하로 내려간 날씨에 파도는 바다를 살아 숨 쉬게 한다. 넘실대는 파도를 보면 잠잠해지기를 기다린 것은 욕심이다. 동쪽 바다 끝쪽에서 시린 날씨에 여행 온 청춘을 바라본다. 짧은 치마에 롱부츠를 신은 모습이 발랄하다.


호미곶 시퍼런 바다에 모든 설움을 버리고 감사한 것들만 가지고 돌아서는 걸음이 가볍다. 여행이 주는 기쁨이다. 바다의 날 것을 보고 난 이후에 우리가 찾은 곳은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카페였다.


카페는 여행자에게는 휴식의 장소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이겨내는 차 한잔은 잠시나마 지친 여행에서 안식의 시간을 주기도 한다. 다른 지역에서 온 이방인은 푸른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사실주의 작품을 남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생각나는 풍경이다.


현대인의 외로움 고독한 장면의 그림을 남긴 호퍼의 그림은 바다가 보이는 풍경에 책 한 권이 놓여 있다거나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외로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홀로 여행을 떠난 이에게 만나는 외로운 등대는 친구다. 바다와 파도 사이에 경계에 선 이방인이 되어 지평선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카페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는 연인들을 바라본다. MZ세대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과 담백한 빵 한 개를 고른다. 하오 네시쯤이면 단맛이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매섭게 부는 바람을 보면 바다에 와 있다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진한 커피 향을 느끼며 더 진한 바닷바람을 만나본다.


한잔의 커피는 여행자를 지독한 외로움에 빠져들게 한다. 이것이 바로 여행이 주는 매력이 아니던가?


어둠이 내려앉는 짙푸른 바다를 보며 한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L이 있다. 긍정의 아이콘이다. 살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이 있을 때 L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순환시켰다. L를 생각하면서 푸른 바다를 안았다.


동해 끝에 있는 카페에 앉아 알랭드보통의 ‘여행의 기술’ 책을 펼쳐 들었다. 정독이 되지 않아 몇 자 읽다 덮어버려도 생각나는 문구가 있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이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바로 이것이 여행의 효과인지도 모른다.


시퍼런 바다를 만났을 때, 여행을 통해 무엇인가를 찾거나 얻으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푸른 바다를 안았을 때 어느덧 커다란 바다에서 내려놓게 된다. 바로 여행을 통해서 걸러지는 시간이 우리의 삶을 한층 더 끌어 올리게 되는 것이다.


한해의 막달에 바다를 안았다. 실은 바다가 나를 안은 것일지도 모른다. 일상의 삶에서 낯선 장소에 서면 많은 생각을 한다. 일상의 삶에서 한번 비켜 서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와 다른 나를 찾기도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여기는 동해의 짙푸른 바다, 넘실대는 파도와 하얀 리조트에 있는 카페에서 아이가 된다.


파도에 맞추어 폴짝 뛰며 춤을 추기도 하고, 갈매기와 함께 종종종 걸음을 걷기도 한다. 추운 겨울날 서로를 껴안으며 찬 바람을 이기는 연인에게 손을 흔들어 본다.


동해 호미곶 손이 있다는 곳에서 내 손을 감추고 그 손을 잡아보기도 한다. 바다에 있는 손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바다의 손과 내 손목이 만났을 때 함성을 지른다.


바다의 끝 동해에서 사람을 먼저 반기는 갈매기와 달리기를 했다. 동해에서는 갈매기가 먼저 사람에게 다가온다. 사람이 달리면 갈매기도 달린다. 시퍼런 바람이 내 뺨을 만지고 간다. 바다를 뒤로 두고 바다를 돌아본다. 미친 듯, 푸른 바다를 보았다.


신현림의 시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의 한 부분이다.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간다.’


넓은 바다를 보면서 너그러워진다. 시퍼런 겨울 바다와 작별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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