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며칠 사이 남도에는 하얀 눈이 내렸다. 하얀 눈을 맞기 위해 공원 산책을 하였다. 하얀 눈 위에 작년 가을의 삶이 오롯이 눈 속에 숨어 있다. 겨울은 나무의 속살을 보여주어 좋다. 하얗게 솜처럼 덮여 있는 눈을 살짝 거두어 내고 싶었다.
눈과 실컷 만나고 돌아온 날, 안녕달의 그림책 ‘눈 아이’를 만났다. 그림책 띠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겨울의 한 가운데서 무엇을 만났나요?’ 물었다. 그림책 표지를 본 순간 이번 겨울을 어떻게 지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올겨울 필자는 두가지의 스토리를 기억한다. 첫 번째 스토리는 조카, 딸 아이와 함께 한 서울여행이다. 서울여행은 요즘 문화 트랜드 용어를 빌리면 ‘공간력’이라는 키워드가 생각났다. MZ세대와의 여행은 서울이라는 장소를 선택해야만 했다. 아이들과 함께 간 곳은 서울 여의도에 있는 더 현대백화점이었다. 더 현대백화점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100평이 넘는 공간에 설치되어 있었다. 빨간 곰돌이가 트리 위에 매달려 있는데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 있었다. 그 다음 찾은 곳은 경동 시장의 스타벅스였다. 경동시장은 1960년대 지어졌던 경동극장을 리모델링하여 만들었는데 청춘들이 선호하는 곳으로 시장 사람들도 나이든 시장에 젊은 청춘들이 많이 보여 활기찬 모습이 좋다고 한다. 경동시장 스타벅스는 장소가 넓어 영상 이미지로 손님에게 알린다. 넓은 공간 스크린에 차를 주문한 사람의 닉네임이 뜨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롯데월드 매직캐슬의 미디어 파사드다. 20분 정도 매직월드 세상을 만났는데 순간 매직의 세계로 빠지는듯한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하루 동안 서울에서 만난 장소는 최근에 이슈로 떠오른 ‘공간력’을 내세운 마켓팅 장소다. 코로나 펜데믹이 벗어나는 시점에 많은 사람이 찾을 공간을 활용하여 기업의 영업전략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실은 필자의 서울여행 목적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작품을 보기 위해서였다. 온라인 예약이 늦어 월요일 개관에 맞추어 서울행을 하였다. 그러나 현장 판매는 오전 10시에 마무리되었다. 새벽바람을 이고 서울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정도에는 원하는 표를 얻을 수 없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우리의 역사 전시관을 보고 박물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가장 멀리 와서 먹은 점심은 생각보다 맛이 있었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우리는 마주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기억은 차가운 겨울바람을 만난 기억이다. 차가운 바람을 만나서 웅크리고 있던 마음을 활짝 펴는 것이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이 있다. 열을 열로 다스린다는 뜻이다. 그러한 것처럼 추위에는 찬 것으로 대응한다. 추운 겨울에는 겨울강가에서 추운 바람과 만나보는 것도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찬 바람 속에서 자신을 맡기며 마음가짐을 해본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강은 섬진강이다, 겨울 강은 거세게 몰아붙이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새해의 계획도 술술 풀리는 것 같다. 휘몰아치는 물줄기에 마음을 내려놓고 차가운 바람에 맞서다 보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제 겨울은 서서히 우리 곁에서 맴돌다 봄으로 가고 있다. 그림책 ‘눈아이’에는 이러한 대사가 있다. 봄이 오자 눈사람이 녹고 있다. 아이는 눈아이를 안아준다. 그때 눈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아이가 묻는다. “왜 울어!” 눈아이가 답한다. “따뜻해서” 눈사람도 아이도 둘 다 아이다. 그러나 존재의 다름을 알게 되면서 계절이 바뀌면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걸 안다. 존재의 다름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것, 아름다운 이별이 또 다음 약속을 기다리는 것이다.
광화문 교보문고 글 판 진은영 시인의 ‘어울린다’ 시의 한 부분이다.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린다./ 우리는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 속을 걷는다.’ 그렇다. 혼자 걷는 것보다는 손을 잡고 찬란한 봄으로 한걸음 내딛어보자.
겨울의 한가운데서 당신은 무엇을 하셨나요? 눈아이와 이별을 고하며 이제는 우리는 봄으로의 삶의 여행을 시작해야 할 때다. 안녕달 작가의 ‘눈아이’ 그림책을 보면서 가장 외로운 순간에 건네는 다정한 겨울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당신의 따스한 시선으로 만나는 세상은 우리에게 활기찬 삶의 에너지를 선사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