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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을 보내며
  • 호남매일
  • 등록 2023-02-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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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물가가 올라 생활비도 아낄 겸 냉털(냉장고 털이)을 하려고 냉동실을 뒤적거리다 보니 작년 가을에 넣어 놨던 팥이 들어 있다.


그러고 보니 지난 5일이 대보름이었다. 대보름이니 찰밥이나 해 먹어야지 하며 팥을 물에 담가두었다.


명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보름이라니 세월이 유수와 같다.


코로나 상황이 종료되어가는 시점에 정월 대보름 행사가 곳곳에서 진행이 되었다. 해마다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던 사람들에게는 올해는 많이들 모여 달맞이 행사를 하니 더 의미가 있는 해가 될 듯 싶다.


정월 대보름에 순천 낙안읍성을 찾았다. 입춘이 지난 후라 봄날 같았다. 가족 단위로 많은 사람이 낙안읍성에 모여들었다.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걷다 보니 달집이 보였다. 사람들이 달집에 소원을 적었다. 필자도 하얀 종이에 가족의 건강과 행운을 적어 보았다. 소원은 달까지 잘 도착했을 것이다.


농경문화에서는 쥐불놀이와 액을 쫓아내는 놀이가 우리의 삶의 주가 되었다면 이제는 액운을 쫓아내는 풍물패, 달집태우기 놀이가 대보름의 행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놀이 문화가 시대에 맞추어 우리의 삶에 자리를 잡아 간다며 세대를 잇는 아이들에게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낙안읍성에 풍물패의 풍악이 들려온다. 정월 대보름에 나쁜 액운을 쫓아내는 농악 소리가 들리니 올해는 좋은 일이 많을 것 같다. 정월 대보름날이 되니 어릴 적 불 깡통을 돌렸던 대보름날의 풍경이 떠 오른다.


보름날이 되면 저녁 밥상을 물리자마자 골목에는 아이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oo야, 동천에 모여라.” 함성과 함께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나무에 장작불을 지펴 깡통에 불이 붙은 나무를 집어넣고 논둑, 밭둑 길에 나이만큼 불을 지피며 새해 소원을 빌었다.


논둑길에 불을 지피는 이유는 봄에 농사 시작 전에 쥐불을 놓아 잡초를 태워 해충의 알을 죽임으로써 농사가 풍작을 하기 위한 농경문화에서 시작된 놀이다.


쥐불을 놀아 잡초 제거뿐만 아니라 부정하고 좋지 않은 기운을 없애버리는 정화를 위한 놀이 문화다.


쥐불을 놓고 나서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영산강 둑길을 걸었다. 마을의 큰 형들은 옆 동네와 불 깡통 싸움을 벌였다.


서로의 기세를 몰아 한바탕 놀이를 하면 온 동네가 법석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나서 새봄에 농사를 지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작은 아이들은 친구끼리 불 깡통을 돌렸다. 불 깡통은 밤하늘에 원을 그리며 동그란 달을 수없이 만들었다. 밤하늘에 달이 많아지면 아이들의 함성은 영산강에 멀리 울려 퍼졌다.


도심에 살면서 어릴 적 대보름 놀이가 많이 사라져버렸다.


필자의 어린 시절은 대보름 날이면 아이들은 불꽃 축제를 벌였다. 수없이 많이 그렸던 달이 소멸 되면 아이들은 불깡통을 강쪽으로 던졌다. 높은 하늘에 부셔지는 불꽃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축제였다.


아이들이 쥐불을 들고 길을 걷는다. 논두렁 밭두렁 따라 영산강쪽으로 길을 걷는다. 앞선 순이는 달빛 따라 걷고, 뒷선 영희는 순이 따라 걷는 길 마음속에 소원하나 담고 길을 걷는다.


밤하늘에 별들이 부셔진다. 영산강에 불꽃축제가 펼쳐진다. 불꽃이 하늘에 아스라이 사라질 즈음에 아이들은 하늘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 그때 함께 소원을 빌었던 선, 덕, 미, 희는 지금도 어느 하늘 아래에서 잘살고 있겠지. 그때 둥근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지.


오늘, 대보름에는 동무들도 묻어둔 그리움 하나 캐내어 보고 있지 않을까?


둥근달이 두둥실 떠오르면 소원을 빌었던 대보름날, 달도 잠이 들 무렵이면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가 밤새 준비한 찰밥, 나물, 유과 등이 장독대에 놓여 있었다. 넓은 들과 강을 뛰어다닌 후 먹은 찰밥은 꿀맛이었다.


‘귀밝아라, 눈 밝아라, 네 더위 가져가라’ 어릴 적 들었던 언어들이 낯선 시대에 살지만 때가 되면 우리에게 세대와 세대로 이어지는 대보름 놀이 문화가 있다.


하늘을 보았다. 달이 떠 있다. 둥근 보름달이다.


달을 보고 소원을 빌어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올해도 만수무강(萬歲無疆)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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