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식 시인 ·작사가
역사의 굴렁쇠는 이 순간도 멈춤 없이 돌아가고 있다. 그러기에 지금도 우리는 조상이 잡았던 그 붓을 물려 잡고 하루하루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써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자랑스러운 역사를 물려줄 것인가 고민하면서.
3·1절은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다. 후손들의 것을 잠시 부탁받은 것이다. 곧 그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삼일절이면 식장에서 간간이 들리던 ‘대한독립만세’ 소리며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면 류관순누나가 생각납니다.’ 그 노래소리도 멈춘 지 오래다. 그저 노는 날일 뿐이다.
삼일절은 새해가 열리면서 첫 번째 맞이하는 국경일이다. 공룡같이 거대한 아파트 숲속엔 두어 폭 외젓이 펄럭일 뿐이다.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독립을 위하여 한 삶을 다 바치고도 모자라 멸문의 화까지 당한 선열들인데 우리는 핑계가 너무 많다. 겨를이 없단다. 산과 바다 해외로 줄행랑을 놓으면서도.
태극기는 태극기만이 아니다. 애국지사들의 피 묻은 얼굴이다. 바쁜 일상에서 언제 만나 뵙겠는가?
국경일을 통해서라도 이따금 만나 뵈어야 한다.
‘너희가 이렇게 사는 것 다 누구 덕인데’ 하며 섭섭해하시는 것 같다.
자녀들의 손을 붙잡고 국립묘지며 유적지를 돌아보는 인파가 줄을 이었으면 좋겠다. 후손된 도리를 떠나서라도 자녀를 위해서 바람직한 일 아니겠는가?
그 시대에 그분들은 그렇게 살았는데 나도 그 시대에 살았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오늘은 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에 대한 해답이 명쾌히 주어질 것이다.
다음 삼일절에는 창마다 태극기가 만발하고 현충원 묘원에 인파가 넘쳐났으면 좋겠다.
- 아우네 장터 -
새천년 삼월 일일 아우네 장터에는
아파트 천천가호 봄볕이 화사한데
피멍든 태극기 하나 옛 추억이 서럽다
그늘진 뒤안길에 밟혀진 싹들이라
복사꽃 피는 봄을 꿈에서 그렸는데
아우네 새 장터에는 사구라만 피었네
울 밑에 봉선화는 관순 누나 화신인가
임 떠난 그 자리에 외로운 빗돌 하나
손톱에 꽃물들이던 그 시절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