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어딘쯤엔가 봄은 오고 있겠지. 봄을 만나기 위해 햇살을 반기며, 봄바람을 기다린 밤, 봄은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 있다.
북쪽에 사는 S는 이른 봄을 만나고 싶다며 남해로 여행을 떠났다. S는 시금치와 남해의 봄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봄소식이 샘나 봄을 찾아 길을 나섰다. 담양을 지나, 곡성을 지나, 구례 섬진강까지 자동차를 몰았다. 아직은 봄은 멀었을까? 아직은 싸늘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구례 섬진강 강변 매화나무 앞에서 차를 멈추었다. 봄 바람결에 핀 청매화가 밝게 웃는다.
해마다 오는 봄을 찾아 섬진강에 간다. 청매화 앞에서 몇 컷의 사진을 담았다. 먼 곳에 사는 벗에게 봄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른 매화꽃을 찾아다닌다.
매화는 봄 마중 가는 길에는 꽃잎을 보여 주지 않더니 하오의 햇살을 받아 꽃잎을 터트려 주었다.
하루 햇살에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매화 꽃잎을 바라보니 따사로운 햇살의 넉넉함이 감사하다.
하오의 햇살을 벗 삼아 섬진강 길을 걸었다. 섬진강에는 물고기를 낚아채는 두루미의 날개짓이 힘차다. 봄이 오니 강물의 흐름이 생동감이 넘친다. 길을 걷다가 강물을 한참을 바라본다. 순천 쪽으로 향하는 섬진강은 강을 사이에 두고 마을이 펼쳐져 있다.
봄 길을 걷다 만난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트렸다. 산수유는 아련하다.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살았던 첫사랑이 떠오르는 아련함이랄까?
홀로 선 산수유나무는 꽃이 피었는데도 스쳐 갈 수 있어 자세히 봐야 한다.
김훈 작가는 ‘산수유는 언제 피는 것인지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라는 문장으로 산수유를 노래한다. 봄은 산수유 꽃처럼 아지랑이가 피듯이 우리 곁에 와 있는 것이다.
그 어딘가의 봄은 나무 혈관에 피가 돌아 꽃의 색을 드러낸다. 푸른 빛 담은 나무줄기에서 매화 꽃잎이 톡 튀어 올랐다. 노란 물줄기 담은 산수유 연노랑 빛 담은 꽃을 폭죽 쏟아지듯이 터트린다.
봄은 가물거리며 어딘가에서 오고 있다. 봄이 오듯이 봄은 간다. 봄 찾아 헤매다 서성이다 봄을 보내게 된다. 어딘가에 봄을 찾으러 갔다가 매화꽃 날리는 섬진강에서 울음을 삼키며 벚꽃이 폭죽처럼 터져 오르는 봄을 맞이할 것이다.
어딘가의 봄을 그리워하다 봄은 입맛으로 온다는 S의 봄나물 소식을 듣는다.
“남해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섬초(시금치)을 파시는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도 환한 봄이 가득 차 있었어. 할머니의 섬초를 한 보따리를 들고 와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잘 삶았더니 그냥 먹어도 봄맛이다.
섬초 옆에 있는 마늘 대도 한 보따리 샀다. 묶은 김을 불에 구워서 마늘 대와 함께 무쳐서 밥 두 공기를 뚝딱 해결했어.” S가 보내준 사연은 무거운 몸도 이끌고 봄 시장으로 발길을 옮기게 한다.
시장에는 벌써 봄이 와 있다. 바구니마다 봄이 가득 차 있다. 시금치, 마늘 대, 쑥, 쪽파, 봄동, 달래, 냉이 등 어떻게 봄나물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이른 봄에 봄을 만날 수 있는 달래와 냉이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봄을 한 아름 집으로 데려와 냉이는 남쪽 나라 무안에서 해풍을 맞은 된장으로 국을 끓였다. 달래는 송송 썰어 명절에 들어온 명인의 간장과 고춧가루, 참기름, 깨소금 듬뿍 넣어 양념장을 만들었다.
김도 구웠다. 고흥에서 올라온 곱창 김이다. 냉이와 된장, 달래, 김 봄을 담은 밥상이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매화보다 더 늦게 피는 목련도 피었다는 제주도 뉴스 소식을 들으면서 봄의 정취를 만끽한다. 그 어딘가에 있는 봄소식을 듣는 봄이 오는 밤의 정적이 좋다.
이해인의 ‘봄이 오는 소리’ 시를 한 부분을 만난다. ‘봄이 오면 나는/ 활짝 피어나기 전에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 꽃나무들 옆에서 덩달아 봄 앓이를 하고 싶다./ 살아 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올리는/ 꽃나무와 함께 나도 기쁨의 잔기침을 하며/ 조용히 깨어나고 싶다.’
이해인의 시를 읽으며 그 어딘가의 봄을 사랑한다. 내가 사는 세상에서 꽃망울이 터지는 봄을 맞이한다. 어디쯤 오고 있는 봄을 만나기 위해 봄 앓이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