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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지 않는 전화벨
  • 호남매일
  • 등록 2023-03-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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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식 시인·작사가


퇴직과 함께 미루던 디스크 수술을 받고 좋아하는 산행을 자제했다. 겨울입네, 하여 웅크리고 살다보니 몸도 마음도 무겁고 답답하였다.


봄맞이 대청소나 할까 하는데 눈길이 한 곳에 멈칫 섰다. 낯선 손님 둘이 눈에 띈다. 그중 하나가 검정 우산이다. 아무리 친해보려 애써도 마음이 가지 않고 서먹하다. 볼 때마다 아쉽고 찝찝하다.


그것은 기억하고 싶은 분으로부터 받은 선물로 그에 대한 애정과 많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주신 분의 정이 묻어나는 것 같아 오래도록 나만이 만져주고 싶은 우산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분명히 있어야할 자리가 비어있었다. 어딘가 있겠지 하면서 찾아봤지만 허사였다. 밤인지라 한잔 하다 보니 아마 청색이 검정으로 보여 ‘이거겠지’ 하고 집어 갔는가 싶다.


체념하고 주인에게 말했더니 역시 그런 일이 종종 있다면서 주인 없는 저거라도 들고 가란다. 나는 들고 오며 혹시나 하고 전화번호를 남겨놓았다. 그러나 지금껏 무소식이다.


또 한 친구는 등산화다. 등산을 좋아하다 보니 자주 신을 것 같아 이번엔 좀 좋은 것으로 준비해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색깔이며 디자인이 아무리 보아도 내 맘에 꼭 들었다. 나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살 때는 많은 돈이 무겁게도 느껴졌지만 신어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 정도로 아깝지 않았다. 나는 아이마냥 좋아라 ‘쿵쿵’ 굴러보고 뛰어도 보았다. 가끔씩 신어볼라치면 그렇게 가볍고 편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며칠 후 모처럼 산행을 마치고 휘파람을 불면서 돌아와 시내에서 꽤 잘한다는 음식점에 들러 주린 배를 실컷 채우고 나오니 있어야할 신발이 없다.


아, 이럴 수가! 실망이다. 둘러보니 내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게 하나 있어 들여다보니 누군가 한 짝씩 바꿔 신고 간 것이다. 비슷해 신어보니 발이 편하니까 무심결에 ‘이것이 내 것이로구나’ 하고 기분 좋게 신고 간 것일 게다. 그러나 나로선 가끔씩 만져보던 모습이 멋 적게 떠올라 더욱 씁쓸하였다.


사랑땜을 못한 터라 잘 먹고도 뒷맛은 참으로 개운치 않았다. 나는 혹시나 하고 밥값을 치른 후 전화번호를 남겼지만 오늘까지 역시 무소식이다.


상표나 디자인이 확연히 다른데 뱃심 좋게 모른척하고 짝 신발을 신고 다닐 수도 없고 버리자니 그동안 든 정이 아깝다.


누군지도 모를 야속한 사람을 원망하다 체념하다 세상 탓을 해본다. 우산이나 운동화 욕심이 나서 가져간 것은 물론 아닐 게다. 순간의 착오요, 실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다. 나중에라도 바뀐 것을 알았으면 합당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무소식이다.


‘뭘 그 게나 그 게지, 내 것도 새것인 걸, 다 그럴 수 있지.’ 하면서 그만둔 것일까? 대충대충 적당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고잔잔한 푸념일 수 있다. 다 자기 마음대로다. 남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더 이상 언급하면 우스운 사람이 되는 세상이다.


이는 자신의 교양과 인격을 버리는 행위인 동시에 시민의식의 부재로 이것이 바로 후진성이다.


누구나 실수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런 실수를 통하여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지 않나싶어 아쉽다.


잘 먹고 산다해서 선진국은 아니지 않는가? 어느 외국인이 우리를 나밖에 모르는 한국인이라고 폄하하였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시대정신은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한 말이 의미 있게 들린다.


멈칫 옷깃을 사리는 낯선 우산과 서로 등 돌린 짝 신발을 바라본다. ‘그럴 수 있지요, 참 고맙습니다.’ 나는 이런 대답을 준비하고 기다려보지만 무심한 전화벨은 울리지를 않는다. 반가운 벨소리가 우리 모두에게 들리는 날이 바로 선진국으로 가는 날일 것인데…


청소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가뿐하다. 하늘이 더욱 푸르게 보인다. 내일 모래는 완도 상황봉 산행이다, 지금쯤 새봄맞이에 바쁠 남녘의 일손과 기지개 켜는 봄뜰의 수즙은 몸짓이 눈에 선하여 가슴이 설렌다.



-돋보기를 쓰고 보자 -



양탄자에 달라붙은 껌 딱지가 역겨웠다


옅고 깊은 만남 우연이든 필연이든


주신 뜻 그게 무얼까 돋보기로 살피며



가다가 한 번쯤은 뒤 돌아 볼 일이다


늘어놓은 일상일랑 속정은 저만치 닫고


밟음에 밟힘 없었나, 돋보기를 고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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