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식 시인·작사가
젖 냄새도 채 가시지 않은 아이가 아이답지 않게 신들린 몸짓으로 노래를 부른다. 사랑이 어떻고 이별이 어떻고 저 푸른 초원이며 그대 당신 립스틱 짙게 바르고 비나리는 호남선 요즘에 와서는 내 나이가 어때서를 메들리로 불러댄다.
대단한 실력이다. 이를 보며 부모는 좋아라고 박수를 치며 미소로 동의를 구한다.
순간 나는 민망하여 고개를 돌리며 듣기를 거부했다. 우리의 속담에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갈잎을 먹으면 죽는다]라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살아남기 힘든 세태를 생각하면 부모들은 조기교육이나 소질개발이라는 대 명제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를 몰라서가 아니다. 일에 순서가 있듯 자람에도 과정이 있지 않는가?
옛날에는 아름다운 노래가 학교로부터 마을로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세상에서 가림 없이 걸러지지 않은 채 학교로 마구 넘쳐 들어오고 있다. 이를 어쩌랴.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전혀 없다. 통제가 전혀 불가능한 시대가 되고 말았다. 불러서는 안 될 노래나 답지 않은 행동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성스런 교단까지 파고들었다. 어린이들의 고운 심성을 거침없이 흔들어대고 있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곱고 바르고 아름답게 커야하는데…이거 큰일 났구나! 이렇게 커서 어떻게 될까? 걱정이 앞선다. 이렇게 자란 어린이들은 어떻게 될까? 오염은 분명하다. 고운 심성 고운 마음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망가지고 좀먹어서 어린이답지 않게 시들게 되고 멍들게 됨은 자명한 사실이다.
생각이며 하는 말도 하는 행동도 어린이다워야 하는데 몸은 어린이. 하는 말은 대학생이나 언니. 하는 행동은 어른이 되어 있다. 어린이 같은데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사람.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왜 어린이는 동요를 부르면서 자라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아기가 젖을 먹지 않고 갈비를 뜯고 화분의 화초에게 고깃덩어리를 준다면 어찌 되겠는가? 소화불량에 걸려 곧 시들고 말 것이다.
아기는 엄마 젖을 먹고 화초는 영양분이 많이 녹아있는 물을 먹어야 한다. 언니는 언니들의 노래를 어른들은 어른들의 노래 어린이는 어린이의 노래를 불러야한다.
어린이가 불러야 할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어린이의 마음을 아름답게 해주고, 깨끗하게 해주고, 착하게 해주고, 사랑스럽게 해주고, 밝고 맑게 해주는 노래이어야 한다. 꿈을 키워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고, 예쁘게 자라게 해주고, 씩씩하게 해주는 영양분이 엄청나게 많은 노래여야 한다.
즉, 창작 동요, 국악 동요, 전래 동요, 수많은 동요·민요, 우리 가곡, 건전 가요 등 많이 있다.
이제 남행열차나 랩이 아니라, 아빠하고 나하고, 낮에 나온 반달은, 동구 밖 과수원 길, 파란 마음 하얀 마음, 이러한 고운 노래 부르면서 파란 꿈을 키워주길 기대해 본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에 파랄 거예요. 산도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 파아란 하늘 보며 자라니까요.’
-사람도 마찬가지다
물고기라고 다 고기가 아니다
수족관에서 사람의 손길에 요리조리 꼬리치는 고기는
숨 쉬는 생선이다. 익지 않아 젓가락이 가지 않았을 뿐이다
대지가 품은 물속에서 비늘을 번득이며
몸통을 힘차게 휘젓고 나아갈 때
비로소 물고기인 것이다
나무라고 다 나무가 아니다
울안에서 겨울도 폭풍우도 모르고
조리 끝에 매달려 정신없이 빨아대는
기 없고 생명력 없는 화분은 이미 죽은 것이다
모름지기 뿌리를 지천에 깊숙히 내리고
지하수 쭉쭉 뽑아 올려 제 힘으로 목축이고
풍우를 견디며 청 이슬도 만들어보고
만공을 향하여 심호흡을 해야
비로소 나무인 것이다
사람도 다 사람이 아니다
배도 곯아보고 눈물도 흘려보고
아픔도 겪어보고 실패도 해보고 두려움에 떨어도 보고
구렁텅이에서 탈출도 해보고 밟혀도 보고 용서도 해 보고
아낌없는 헌신과 사랑을 해봐야 그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는 개가 가는 길이 있고
뱀은 뱀이 가는 길이 있듯
사람은 사람의 길이 있다
사람의 길을 두고 개나 뱀의 길을 가면 안 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바로 가야한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좁아도 사람의 길을 가야
비로소 사람인 것이다
악보가 닫혀져 잠자는 음표는 음악이 아니다
악기에 올려저 제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음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