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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봄이다
  • 호남매일
  • 등록 2023-03-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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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지난 8일 광주에 목련도 하얀 미소를 터트렸다. 꽃잔치 열렸다.


광양 매화 마을에는 축제가 한창이다. 광대나물도 보랏빛 나팔을 불기 시작했다. 길 가던 소녀가 “와 개나리 피었다.” 소리를 질렀다. 돌아보니 개나리꽃 닮은 영춘화다.


내 책상 위에 널브러진 책을 바라본다. 책을 읽을 때 한 권을 집중해서 읽기보다는 이 책, 저 책을 필요할 때마다 살펴본다. 집중력이 짧아진다. 책 보는 시간보다 멍하니 창밖을 보는 시간이 길다.


책상 옆 오른쪽을 살펴보니 김화영 산문집 ‘행복의 충격’ 이 펼쳐져 있다. 책을 싸고 있던 표지는 사라져버렸다. 책 표지는 봄에 어울리는 옥색이다. 그 밑에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가 놓여 있다. 그 아래로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책이 있다.


봄이 와 여행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을까? 여행을 떠나고 싶은데 떠날 수 없는 상황에 책만 뒤적거리고 있다.


김화영의 ‘행복의 충격’을 다시 펼쳐 들었다. 책의 16페이지에 ‘1969년 가을,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을 등으로 밀어내면서 나는 지중해를 향하여 떠났다.’ 이렇게 멋진 문장 남겨볼 기회가 있을까? 하며 주말 비 오는 창밖을 무심하게 보고 있다.


단비다. 처마 밑에 후두둑 떨어지는 빗줄기에 맞추어 움직여 본다. 아직 물이 덜 오른 나뭇가지에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봄에만 만날 수 있는 서사시다.


봄비가 내려 쌀쌀한 바람이 부는 창가 베란다 나무에도 햇살이 고인다. 비가 그친 다음 찬란한 햇살을 담은 창가의 모습을 기억해 본다.


비는 계속 내렸다. 오늘 같은 날은 강천사의 쌀로 만든 소금 빵 생각이 난다. 지난주에 길을 걷기 위해 찾았던 강천사 가는 길에 쌀 빵을 만든 카페를 찾았다. 들어선 순간 봄이 활짝 피어 있었다.


튜율립이 나무상자에 채워져 여릿여릿한 봄을 보여주었다. 튜율립 옆에 서 있는 나무는 올리브 나무다. 지난해 겨울 추위를 이겨 내지 못했나 나뭇잎 반쯤 노란 잎으로 봄을 맞이하고 있다. 올리브 나무, 튜율립 꽃을 보니 봄으로 한 걸음 다가선 것 같다.


나른한 일요일 오후,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서 산책을 했다. 일찍 꽃을 보여준 매화는 벌써 지고 있다. 버드나무도 올리브색 물줄기를 올려 주었다.


봄에 보이는 식물은 감탄사다. 산책길에 해마다 보게 되는 담쟁이가 새순을 드러내고 있다. 담쟁이마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담을 행해 있다. 어떤 담쟁이는 작년 겨울을 못 이겨 바닥으로 떨구어져 있다. 담을 꽉 잡은 담쟁이는 새잎을 내었다. 그중에 행인, 동물에게 뜯긴 담쟁이는 제 생명을 다하지 못하고 땅으로 곤두박질쳐져 있다.


담쟁이를 보니 인간의 삶이 보였다. 우리 인간의 삶도 곡예를 넘듯 세상을 향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는 타인에 의해 우여곡절을 겪으며 세상을 향해 가고 있다.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는 넷플렉스 드라마 ‘더 글로리’ 에서 마음 아프게 다가왔던 대사는 연진이가 동은이에게 한 대사다.


“너 같은 것들은 가족이 제일 큰 가해자인데 왜들 딴 데 와서 따질까?” 대사에 가슴이 쿵 무너진다. 동은이의 가장 큰 상처는 엄마다. 상처를 안아주어야 하는 가족이 가장 큰 가해자일 때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담을 넘는 담쟁이가 저 담을 훌쩍 넘을 수 있게 더 강한 힘을 가졌으면 한다. 담쟁이 새순에게 새봄에 자기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며 봄이 왔어. 높은 담을 넘어 세상을 해서 쭉 뻗어 나가라고 응원을 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리브색 옷으로 갈아입은 버드나무를 본다. 비가 온 뒤 잠깐의 햇살에 비추는 올리브색 나무의 결이 고귀하다.


청매실 꽃잎이 바닥에 휘날린다. 바람에 꽃잎이 날리는 향연을 잠시 바라본다. 바람, 매화, 봄내음, 비가 멈춘 봄의 충만함이다.


이 모든 봄의 햇살, 이 봄이 주는 무한의 가능성에 온몸을 내어주는 나무의 합창을 환대해 본다.


봄바람은 늙은 나무에게도 분다. 인간의 마을에도 봄바람이 분다.


봄이 왔다고 나갔다 이미 와버린 봄에 놀라지 말고 봄과 함께 산책을 떠나자.


그대 안에 봄을 담고 봄, 봄이다. 큰 소리로 마중해 보자. 까치꽃도 피었어, 광대나물도 꽃도 피었어. 냉이꽃도 피었어. 봄,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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