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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매일
  • 등록 2023-03-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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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준 식 시인·작사가


그 날은 부여 부소산 역사체험학습이 있는 날이었다. 교정에는 일찍부터 내 사랑하는 귀여운 참새떼들이 삼삼오오 재잘대고 있었다.


준비를 서둘러 마친 후 체험학습의 의미를 잊지 말고 많이 느끼고 오라 일러 보냈다.


열진행렬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니 들끓던 교정은 순간 폭풍전야 같은 적요감까지 들었다.


오전에 출장을 마치고 교장실에 막 들어서자 벨소리가 유난스럽게 울린다. 인솔 총책임자로 가신 교감선생님의 나직한 목소리가 자꾸 더듬거린다.


내용인즉 장난 끼 많은 한 학생이 흔들던 막대기에 이지훈 어린이의 앞니가 둘이나 나갔다는 것이다.


소규모 학교이기에 면면을 기억하고 있다. 이목구비며 그 마음씨와 행실까지도. 아파하는 지훈이 모습이 선하다.


내 품으로 깊숙이 안겨온다. 손자 사랑이 지극한 할머니의 모습이며 교육에 대한 이해가 깊으면서도 바쁜 생활에 짬을 내지 못해 죄송하다는 부모님 모습이 떠올랐다.


초임 교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돌보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던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학교교육의 목적이 얼핏 지식교육이라 생각되지만 그보다 인간교육 내지 인성교육이 먼저이며 더 앞선 것이 안전교육이며 생명교육이라 생각해 왔다.


학교는 연구기관이 아니다. 이론이 아닌 실제상황인 것이다. 행동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 어떤 위대한 교육철학이나 신념도 사명감에 앞설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신조였다.


걸찬 목표나 멋스런 구호가 피해당사자인 학생이나 그 부모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문해 본다.


그러기에 행사 전에는 반드시 행동예측을 하여서 충분한 지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여 왔다.


그런데 뭔가 잘못 되었다.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마음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에 마음이 아팠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는 말이 꼭 맞다. 그간에 일궈 놓은 성과나 고고한 권위는 물론 체면과 자존까지도 곤두박질한다.


순간 만신창이가 되는 것이다. 집에 부모 있듯 선생님은 학교에서 교육자 이전에 부모인 것인데…


지훈이와 가족의 아픔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책임소재를 떠나 교육자적 내 양심에 묻는 질문이었다. 선생님들이 잘못한 것은 곧 내가 잘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무릎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 지훈이를 위로해 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지훈아, 교장선생님을 용서해다오.’


‘지훈이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강산이 두어 번 바뀌었다. 지금쯤 건장한 청년이 되어 있을 지훈이의 환한 모습이 무척 보고 싶다. “지훈아.”



- 바로 사는 것-



잘하고도


욕먹을 수 있다


그것은 자랑이다



안일함과


타협하고


쾌재를 부르지 마라


그것은 슬픔이다



내가 있는 곳이


내가 없었을 때보다


나아지도록 하라


그것은 모두의 칭송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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