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준 식 시인·작사가
아침 안개가 걷히면서 드러나는 모습들은 모두가 신비롭다. 오늘도 좋은 만남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어 출근을 서둘렀다. 교문을 들어서자 막 터지기 시작한 국화꽃 망울들이 먼저보고 반갑게 맞아준다.
조회를 마치기가 바쁘게 교육청에서 도지정연구학교 발표를 앞두고 장학협의차 나왔다.
학교를 안내하던 중 일학년 교실을 막 지나는데 자모 한 분이 성큼 다가오더니 면담을 요청한다. 간단한 이야기라면 말씀해 보시라 했더니 긴 시간이 필요하다기에 오후에 만나면 어떻겠느냐 했더니 “예, 그러지요.” 하며 가는데 눈빛과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안내를 하면서도 잔잔한 파문은 계속 일렁인다. 삭이지 못한 불만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게 뭘까?
오전 일과를 마치고 창밖을 보니 아이들 모습이 더욱 활기차다. 든든히 먹고 나니 힘이 솟는 모양이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하는 순간 자모의 눈빛이 번개처럼 스쳐간다.
일학년 주임선생님께 물었더니 그런 일이 있었단다. 여학생 발을 걸어 넘어뜨리기에 꾸중을 하였더니 먼빛에서 보고 있던 엄마가 달려와 결론 없는 입씨름을 한바탕 하였다는 것이다. “남의 반 아이에게 왜 이래라 저래라 했느냐, 당신반 애들이나 잘 가르쳐라.”는 것이었다.
기다려도 온다던 자모가 오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 만나기를 청했더니 어떻게 알았느냐 반문한다. 교장이니까 알아야지요. 했더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됐어요.” 하고 전화기를 놓는데 철대문 닫는 소리만큼 가슴을 무겁게 친다. 얼떨결에 따귀를 맞은 격이다. 하나뿐인 내 자식 귀한 줄만 알았지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는 미처 생각지 않은 게다. 지금까지 다른 반 선생님을 어떻게 불렀을까 궁금하다. 아마 아저씨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텐데…
선생님들도 그렇다. 어느 중학교에서는 학생을 훈계하다 담임들이 멱살잡이를 했다는 신문보도를 보았다. 내 자식이나 내 반 아이가 아니라 해서 고개를 돌려야 한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가정해 본다. 옆집은 사기꾼 뒷집은 절도범 앞집은 살인범의 동네에서 나만이 독야청청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묻고 싶다.
며칠 전 오십 줄에 막 올라선 선생님 한 분을 만났는데 5학년 옆 반 아이가 자유게시판에 올렸다는 글을 보여주었다. 내용인즉
“00아, 깝치지 마라. 나이를 먹을 만치 먹었으면 집근처 양노당이나 갈 것이지 아이들은 왜 괴롭히냐? 아직도 근무하고 있냐? 인제 퇴직을 하였으면 한다. 열공하라. 000 선생 시대는 끝났다. 물러가라” 는 것이다. 이 학생 부모는 어떤 분이며 이 학생이 커서 어떤 사람이 될지 무척 궁금하다.
군사부일체의 시대는 진즉 갔다지만 집에서는 부모님이라면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부모 아닌가? 조카자식한테 혼절할 정도로 몰매를 맞은 격이다. 실신에 가까울 만큼 허탈해하며 낙담하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
“이 글을 보니 저도 현실에 안주하고 싶네요.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작아 보입니다. 학생 말대로 그만 둘 때도 된 것 같고요“
지금까지 네 반 내 반 가리지 않고 오직 교단교사로서 참교육을 부르짖으며 참스승의 길을 가겠다고 최선을 다해 온 소문난 선생님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위로하며 그 허한 가슴을 무엇으로 채워준단 말인가?
인터넷과 카메라폰으로 세상은 열릴 대로 열렸다. 이런 세상에서 참교육자이기를 고집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물정(?) 모르고 열정만 가지고 덤비다간 언제 어디서 직격탄을 맞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각박한 전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알아도 모른체 보고도 못 본 체 무사안일과 적당히 타협하고 ‘그래그래’ 하면서 사는 게 현명하다.
교원노조, 교육연합회 참교육학부모회 학교운영위원회 등의 각색 목소리가 커질 대로 커진 교육현장을 어느 분이 교육만평을 하였는데 학생은 놀자 판, 교실은 난장 판, 교사는 죽을 판, 교감은 눈치 판, 교장은 미칠 판 교육은 개판이라 하였다. 구구절절 맞다.
교육의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교사는 참 교육자이기를 포기하고 있다. 우리교육 어디로 갈 것인지 서글퍼진다.
길거리 폭력이나 성희롱을 하는 젊은이를 보고 “이래선 안 되지” 하고 나서면 ”당신이 뭔데 참견이야, 개망신당하지 않으려면 빨리 꺼져“라는 호된 충고(?)를 듣는 세상이 되었다. 하늘은 예제 같은데 세상 참 너무 변했다. 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모두가 교육자이기를 포기하여도 ‘나는 아니다. 내 갈 길을 가겠다.’ 교단을 떠날 때까지 ‘교육자의 양심과 사명은 포기할 수 없다’ 며 참 스승의 길을 가야겠다고 강변하는 선생님들이 많은 세상이 그립다.
“그러면 안 되지”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짚어주는 그 가르침이야말로 그 때 그 어린이에게 가장 필요한 가르침일 것이다. 이것을 거부한다면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 때 그 말씀이 내 운명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다.’고 두고두고 감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그립다.
다른 선생님들은 모두 고개 돌리고 벌써 저만큼 세류를 타고 유유자적 하는데 유독, 교육자의 사명을 무겁게 느끼며 힘겨운 사도를 고집하는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참 선생님이십니다. 다음 해에는 제 자식을 맡아주십시오.”라고 말하는 한 수준 높은 학부모들이 많은 세상이 그리워진다. 그 날이 언제일 런지.
갓 피기 시작한 국화가 일학년 아이들 같이 귀엽고 청순하다. 저들도 손님을 맞기 위하여 서둘러 피워 주려 애쓰는데 햇볕은 아직도 왜 이렇게 따가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