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봄이 온다. 연두 푸르름, 봄이 온다. 분홍 향긋함, 봄이 온다. 따사로운 햇살로, 성큼 다가선 봄, 봄은 색으로 온다. 그 모든 색을 손안에 가득 담아본다. 열린 봄 가득 담아서 행복을 꿈꾸는 이에게 환한 봄을 보낸다.
봄날은 감탄사로 하루를 보낸다. 들판에 피어 있는 들꽃에 감탄사, 버드나무의 올리브색을 보면서 푸르른 새싹이 솟아오름에 대해 감탄사로 자연에 답한다. 감탄사를 부르는 행복한 봄을 만나기 위해 주말 아침 이른 시간에 강진으로 향했다.
남도의 봄 시작은 강진이다. 강진은 봄 만나기 좋은 고장이다.
강진에 있는 금곡사는 벚꽃이 일찍 꽃을 펼쳐 벚꽃을 만나려면 금곡사 삼십리 길을 선택하면 좋다.
금곡사로 가는 까치내로 길은 붉은 진달래가 길마다 피어 있어 벚꽃이 덜 피어 있어도 즐겁다.
금곡사 가는 길 작천마을은 마늘밭이 펼쳐져 있어 초록의 들판을 보는 것도 이 봄을 신나게 해준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들일을 하시는 농부의 바쁜 손길을 멈추지 않는다. 따스한 봄바람이 농부의 노곤함을 날려준다.
봄은 싱그러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봄이 오는 들판을 바라보면 눈동자가 커진다.
강진 금곡사로 가는 길에 사의재에 있는 주막에 들렀다. 정약용 선생님이 유배길에 잠시 머물렀던 사의재에도 봄이 왔다. 사의재 주막에서 정약용 선생님이 드셨다는 아욱국과 바지락 전은 이 봄을 다 만난 것처럼 속이 후련해진다. 주막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사의재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 본다.
사의재는 다산 정약용이 4년 동안 머물면서 조선의 난제를 해결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수많은 저서를 남긴 곳이며 사의재는 ‘생각은 맑게, 용모는 단정히, 말은 적게, 행동은 무겁게, 올바른 행함을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사의재에서 영랑생가까지는 걸어가도 좋다. 봄이 오는 길목에 낮은 담장으로 보이는 봄꽃을 보며 콧노래가 나온다.
영랑생가 뒷마당에는 동백은 두 번 피고 지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한번, 땅 위에 붉게 피어 영랑생가를 찾는 이에게 봄소식을 알려 준다. 영랑생가 장독간 마당에는 살구나무 꽃잎이 휘리릭 날리고 있다. 영랑 김윤식이 말한 ‘오매 단풍 들겠네.’ 단풍이 살구나무이지 않았을까 싶다.
영랑생가를 한 바퀴 돌고 까치내 길을 따라 강진에 있는 녹차 밭으로 향했다. 봄이 오는 길목에는 푸르름이 주는 싱그러움이 좋다. 녹차 밭길을 가다 강진 경포대로 향한다. 봄은 여기저기에 가득 묻어 있다. 봄 길을 나서는 순간부터 행복이 등을 밀고 있다.
봄은 길을 나서는 순간부터 행복이다. 정호승 시인의 ‘봄 길’ 시를 만나본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봄 길, 시를 읽으면서 ‘행복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것을 이미 이해하지 못할 때는 너무 늦었다.’ 김화영 산문집 ‘행복의 충격’ 에 나오는 문장이 생각이 난다. 더 설명이 필요 없겠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 봄, 행복이라는 단어를 동사로 인식하기에 햇살이 부서지는 봄날에 길을 나서는 것이다. 봄에 만나는 행복은 동사다. 어디를 가더라도 행복이라는 언어를 충분히 안겨 준다.
봄이면 떠나라. 당신의 삶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충족시켜주기에 가장 만족스러운 날이 될 것이다. 떠나지 못한다면 동네를 한 바퀴만 돌아도 충분한 행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봄의 행복은 색으로도 온다. 봄이면 만나는 수많은 색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분홍, 연두, 살구, 올리브, 핑크, 초록, 하늘…
그 어떤 색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늬들이 펼쳐지는 봄날에 행복은 동사다. 문밖을 나서라. 당신의 한걸음이 행복을 성큼 다가오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