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봄 바람
  • 호남매일
  • 등록 2023-04-04 00:00:00
기사수정

/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온 동네가 꽃 잔치가 열렸다. 예년보다 2주가량 빠르게 만개한 벚꽃으로 꽃놀이를 계획한 사람들은 갑자기 일정을 바꾸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벚꽃이 온 동네 만개해 밤 벚꽃을 보기 위해 산책하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환하게 핀 벚꽃 옆에 목련은 처연한 모습으로 봄과의 이별을 고하고 있다. 엊그제만 해도 환한 빛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목련을 보니 세월이 덧없다.


동백처럼 질 때도 아름다운 꽃이 있는 반면에 목련은 처연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연으로 돌아가는 꽃도 있다.


모든 꽃이 순간에 피었다. 산과 들 온 천지가 꽃동네로 변했다. 온 동네가 꽃 잔치로 변하게 하는 주범이 누구일까?


권나현 시인의 봄 바람난 년들 시를 보면 대략 짐작을 할 수 있다.


‘수상한 바람 넘이 귓가에 속삭댕께 안 넘어갈 재주가 있당가?’를 보더라도 바람이 문제다.


봄꽃이란, 매화 지고, 벚꽃 피고 지고 난 다음에 배꽃이 피는 순서로 자연의 섭리가 있을 것인데 온 산과 들에 꽃이 휘리릭 무리를 지어 피어올랐다.


따스한 바람이 몰고 온 들에서 보는 꽃들은 자연스레 봄바람 난 꽃을 보기 위해 길을 떠난다.


올봄, 모든 꽃이 피게 범인은 바람이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 들판에 잠자고 있는 꽃들을 모두 불러 버린 것이다. 온 산과 들에 꽃들이 동시에 피니 아름다운 광경이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를 어긋나게 하며 자연이 스스로 무너지는 상황을 만들 것 같은 두려움도 느낀다.


권나현의 시를 보면 ‘참말로 수상한 시절이여 여그 저그 온천지가 난리도 아니구만’ 수상한 시절인가 보다. 비는 내리지 않고, 산불은 나고, 그 와중에 사람들은 꽃이 피어 있으니 꽃 맞이를 한다.


“보소, 자네도 들었는가? 꽃들이 바람이 났다는 것을 온 들판마다 상춘객을 불러 모아 도로가 몸살을 앓고 있다네. 쪼개만 나가더라도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는 사람,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아름다운 꽃길에서 사진을 찍기에 바쁜 사람들을 보고 나면 봄에는 정신 챙겨야써. 정신없이 다니다 보면 이 봄이 자네 정신을 쏙 빼 버릴 것이네.” 서울에 사는 지인이 톡을 보내 왔다.


지인의 글을 읽으며 정신 차리고 한꺼번에 핀 꽃들을 잘 만나야 할듯싶다. 온 천지에 꽃이 폈다고 찾아다니느라 몸살이 나지 않을까 싶다. 섬진강으로 벚꽃 보러 가고 나주에 배꽃은 언제 볼지 한꺼번에 핀 꽃을 보려니 올해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판이다.


봄바람이 솟아오르게 한 꽃을 찾아 헤매다 보니 마음속까지 헝클어진 몸을 추스러야 할까 보다.


차 한잔을 준비하고 앉아 마음을 잠재우며 책으로 향한다. 그런데 책도 봄이다.


한 시인의 글에 봄에 핀 꽃은 산화한다는 말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매화는 이미 졌고 벚꽃이 지는 강변을 걷는다. 꽃이 지니 벌써 봄이 가는 듯하다.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봄을 기둘리고 있을테요.’라는 시어가 머릿속에 스친다. 김영랑은 봄은 기다리는 마음과 봄을 보내기 싫어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봄에는 이래저래 마음 뒤숭숭, 머리가 복잡한 시간이다. 아마 주범은 봄바람이다.


봄꽃들은 미친 듯이 피어올랐다. 까치꽃, 광대나물, 수선화, 냉이꽃, 매화, 목련, 히야신스, 벚꽃, 배꽃, 장다리꽃, 산수유, 생강나무, 복사꽃, 살구꽃, 앵두꽃, 유채꽃, 장다리꽃, 꽃마리, 현호색, 할미꽃 등 솟아올랐다.


이 꽃을 피우게 한 주범은 바람이다. 이 바람 잡으러 어디 쪽으로 가 볼까나. 아마 벚꽃이 늦게 핀 곳이 진안이라지.


봄 가기 전 도시락 챙겨 진안으로 길을 나서 볼까나. 이놈의 봄바람을 단단히 잡아 놔야지. 다른 곳으로 가서 사람 마음 뒤숭숭 속삭이고 있을 것이다. 얼른 달려가서 봄바람을 잡아야겠다. 남쪽에서 부는 바람이 북쪽에서는 쉬엄쉬엄 가야지. 정신 차릴 수가 없다.


권나현의 시 마지막 부분이다. ‘보소, 시방 이라고 있을때가 아니랑게 바람난 꽃년들 밴질밴질한 낯짝이라도 귀경할라믄 우리도 싸게 나가 보드라고’ 그래 봄바람이 주범이지만 내 마음이 벌써 봄을 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봄이 가기 전에 바람난 꽃, 낯짝이라도 봐야겠다.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문화 인기기사더보기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