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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여인
  • 호남매일
  • 등록 2023-05-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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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녹차 따는 시기다. 차를 만들어 나눔을 좋아하는 지인은 야생차를 따러 지리산으로 숨었다.


곡우가 지나고 6일에서 10일 지난 후에 딴 찻잎으로 만든 차가 좋다. 곡우는 4월 20일이었다. 초의선사가 쓴 동다송에서도 차잎 따는 시기는 곡우 전후가 좋다고 한다.


차 따는 것보다 여행을 좋아하는 여인이 길을 나섰다. 각자의 사연을 담고 이팝나무가 흐드러지게 핀 들판을 세 연인이 걷는다. 여인의 뒷모습을 보니 살아온 세월이 보인다. 세 여인이 걷는 걸음 뒤로 야성의 삶, 그림자가 엿보인다.


길을 걷다 A여인이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나라 풍습에서 ‘서리’ 가 있다. 밭에 심어놓은 작물을 여러 친구가 재미로 하는 놀이의 일종으로 농촌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경험하였음직한 서리는 아이들에게만 묵인되었던 관용적 놀이다. “환한 보름달이 뜬 5월이었어요. 밭에 심어놓은 딸기가 먹고 싶어 친구들과 딸기를 따기 위해 비닐을 들고 나섰던 것 같아요. 친구들과 봉지에 딸기 몇 알 담고 딸기밭은 나오는데 딸기밭 주인이 불빛을 비추자 몸을 숙이고 개울가로 향했는데, 개울가에는 하얀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지요. 보름달이 하얀 찔레꽃을 비추자 찔레꽃 향기가 가득 안겨 왔어요. 아마 제 기억에 가장 아름다웠던 봄이었던 것 같아요. 환한 보름달이 찔레꽃에 비추는데 찔레꽃 향 내음이 온몸에 퍼지는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찔레꽃이 만발하는 봄이 오는 산하를 보니 그날의 아름다웠던 풍경이 떠오른다는 이야기를 마무리하였다. 봄날은 그런날이다.


푸르른 봄날이 간다. 세 여인이 완주 화암사 숲길을 걷는다. 숲에는 오동나무, 아카시아, 서어나무, 밤나무가 하늘로 향해 뻗어 있다.


숲길을 지나 다리를 건너 풀꽃들과 이야기를 하며 걷는다. 복수초도 지고, 이른 봄꽃은 지고 이제 여름꽃이 피기 시작한다.


O가 풀꽃 사진을 찍는다. 하얀 꽃잎을 가진 풀꽃은 생소한 풀꽃이다. 찾아보니 미나리냉이 풀꽃이다. 평소 가족들과 산책을 좋아한다는 O는 풀꽃에 관심이 많다. O의 풀꽃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덧 화암사 마당에 와 있다. O는 모란꽃을 특히 좋아한다. 화암사 마당에 심어진 붉은 모란꽃 앞에서 몇 번의 감탄사를 들었는지 모른다.


화암사 가는 길은 작은 골짜기를 지나고 큰 바위를 지나고 나뭇잎 사이를 지나며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밟고 안도현의 ‘화암사 내 사랑’ 시를 읽고 고개를 드니 우화루가 귀퉁이를 살짝 보여준다. 우화루 앞마당 매화나무가 푸르다.


화단에 금낭화가 아름드리 피어 있다. 우화루 앞마당이 너무 아름다워 서성이다 보니 한참이다. 이렇게 찬란한 봄 앞에서는 누구나 서성인다. 화암사 마당은 작다. 누구나 품을 수 있는 마당이다. 마당 앞 마루에 앉아 가끔 절에 다녔던 어머니를 생각했다.


불심이 높았던 분도 아니었는데 막내 결혼시키고자 공을 들이려 다니셨던 어머니, 어머니의 불심은 크지도 높지도 않았으나 자식에 대한 정성은 지극했다.


어머니를 생각하니 최근에 읽은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러시아 동화 바살리사의 이야기를 담은 구절이다. ‘바살리사는 어머니가 딸에게, 이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여성 직관의 힘을 축복하는 과정의 이야기다. 직관이라는 위대한 힘은 번개같이 빠른 통찰력이고 감각이며 지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직관의 힘으로 얻어지는 삶의 지혜를 많이 볼 수 있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직관의 지혜를 얻는다.


세여인은 화암사 극락전을 한 바퀴 돌다. 뒷마당에서 동시에 멈춘다. 겹벚꽃이 바람에 쉼 없이 날리고 있다. 푸르름에 안긴 절에 분홍빛 꽃잎들이 바람에 날려 뜰 안에 내려앉는다. 겹벚꽃은 가는 봄을 말해준다. 세여인은 말없이 봄 안에 들어 있다. 뒷마당 뜰에 이른 봄꽃은 지고 금낭화, 아이리스가 피어나 눈길을 머물게한다.


화암사 절 뒤뜰에서 하염없이 서성인다. 돌아서 가려다 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보고 다시 걸음을 멈춘다. 천년 고찰 화암사에서 풍경소리 듣다 길을 멈추고, 마당 안으로 들어온 햇살을 보다가 길을 멈추고, 마루에 앉아 불명산 능선 자락을 보다 보니 어느덧 하산할 시간이다. 녹차 따는 여인은 무명 주머니에 얼마나 차 잎을 담았을까? 봄 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하루가 뉘엿뉘엿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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