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식 시인·작사가
‘君君臣臣 父父子子’
답게답게 살겠다고 가슴팍 안쪽에 크고 깊게 써 두었다.
선생이 되어서는 선생답게 살아야지 했다. 교장이 되어서는 교장답게, 집사가 되어서는 집사답게, 시인이 되어서는 시인답게 살아야지 했었다. 허나 그게 말처럼 어디 쉬운 일인가?
조신한다 하면서도 무식해서 무지해서 때로는 덤벙대다 일을 낸다. 그때마다 분별없이 나서는 방정맞은 입술을 세차게 두드려 보지만 여적 쌓은 모래성은 어느결에 무너졌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모래 속에 스민 물을 어찌 되 거둘 수 있겠는가. 밀고 또 밀어 올리다 지쳐 그 돌에 눌리고 마는 시지프스 운명인 걸.
먼 길을 가다보면 가는 비도 장대비도 맞는다.
더러는 날아가는 새똥 세례도 받는 것이 사람살이 아니던가. 그때마다 삿대질하고 나설 수도 없는 일 ‘이게 내 속이오’ 하고 뒤집어 보일 수도 없는 일 억장에 묻어야 한다. 용암처럼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못된 성깔을 감당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널널한 마음으로 ‘허허’ 하면 고만인 것을 나이는 어디로 먹었는지 밴댕이 속이 들어주질 않는다.
무덤까지 가지고 갈 보물이라도 되는 건지.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그러기에 성서에도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 고 쓰였나 보다.
세상은 성인군자를 요구하지만 그러지 못했음에 변명할 겨를도 없다. 그마저 구차한 일이 아닌가.
돌 판에 이름 석 자 부질없이 새기려 함은 더더욱 아니지만 행여 그러다간 큰 코 다친다.
함부로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 비우고 있는 듯 없는 듯 다소곳이 분수대로 살아갈 일이다. 가녀린 인격이나마 소중하게 지킬 일이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심사가 오죽하랴만 비온 뒤 다져진다는 속담과 잠언 말씀에 위안을 삼으며 그나마 덜 망가진 인격조각을 하나 둘 눈물로 거둔다.
답게답게 살자고 어금니를 앙다물고 다시금 허리끈을 조인다.
- 회심곡 -
탐욕에 젖은 마음 오만였나, 편견였나,
물빛 고와 마음 주고 향기 좆아 날았는데
눈 들어 하늘을 보니 뜬구름만 돌더라
자르고 또 잘라도 웃자란 교만 있어
비우고 또 비워도 넘치는 허욕 있어
언제나 하늘 우러러 회심곡을 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