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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간호사
  • 호남매일
  • 등록 2023-05-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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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식 시인·작사가


거리는 온통 벚꽃의 물결이다. 내 생애에 이렇듯 화사한 봄은 처음인 것 같다.


아내와 모처럼 나들이를 준비하는 참인데 전화벨이 울린다. 시골 사는 동생이었다. 어머니가 이상하단다. 말이 어눌하고 한쪽을 못 쓴다는 것이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번득 스친다.


해를 더해 총기가 사라지는 어머니를 향해 귀를 쫑긋 세우기를 십여 년. 마음은 늘 고향집에 있었다.


지척인데 왜 이렇게 멀까? 단숨에 달려갔다. 엊그제까지도 생생하였던 그 눈동자가 아니다. 많이 풀려 있었다.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핼쑥한 모습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피가 낭자하고 신음소리가 진동한다.


생과 사가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한 올의 들숨이 버겁다. 숨 한 번 고른다는 것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어머니는 며칠 후 절반의 승리를 얻어냈다. 뇌경색으로 왼쪽 수족을 못 쓰게 된 것이다.


전부터 용변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더욱 힘들어졌다. 여러 방법을 동원했으나 필경 카데타를 쓰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의사는 간호사를 불러 지시하였다. 서른이 채 안 돼 보이는 간호사가 소변 흡입기구 일체를 들고 들어왔다.


커튼 밖으로 나가려는 나를 불러 세운다.


“아저씨, 할머니 팬티 벗기세요.”


얼떨결에 시키는 대로 했다.


“기저귀도 빼내세요.”


당황해하는 순간 어머니는 내 손을 힘껏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마구 움츠리신다.


“할머니, 이 손 놓으세요.”


간호사가 기계적으로 손을 뜯어낸다. 어머니는 완강했다.


“아저씨, 어서 벗기세요. 그리고 가랑이를 벌리세요.”


금속성 명령에 반사적으로 따르던 나는 화가 치민다.


“이게 무슨 짓이야? 나보고 벗기라니…


나는 손을 털고 나와 마침 지나가는 간호사를 들여보냈다.


맏자식이 아랫도리를 끄집어 내리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어머니와 나의 인격은 안중에 없었다.


우선은 자신의 할머니일 수 있고 훗날에는 자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상에 가려 보지 못한 게다. 야속한 마음이 자꾸만 고개를 든다.


어머니는 내 앞에 길게 누워 계신다. ‘병원에 오면 곧 나을 줄 알았는데 더 죽겠다’는 하소연이 밤마다 계속된다. 진통제로 사신다.


‘어머니, 저물녘 남은 길을 어찌 이리 힘들게 가시나요?’ 내 가슴엔 뜨거운 강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화사한 거리가 유령처럼 얼쩡거릴 뿐 내 앞에 다가오지 않는다. 나의 봄은 아직도 멀리 있나 보다.



-실버 병실 -



솟구쳐 날려다가 추락하는 날개였다


어혈든 응어리를 풀지 못한 억겁였다


청청한 그리운 그 날 여명 닫힌 자리다



꽃무늬로 펼친그림 벽공에 띄워놓고


복받쳐 울어버린 백색세월의 회랑을 본다


날갯짓 힘이 벅차서 퍼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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