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준 식 시인·작사가
사범학교 다닐때 일 년여 한솥 밥을 먹었던 친구에게 어려움이 닥쳐왔다. 나름대로 잘 풀리는가 했었는데 아내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가세마저 기울어졌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병명도 생소한 근위축성측삭경화증으로 십만 명당 서너 명이 발병한다는 일명 루게릭병이다.
현대의학으로는 원인도 모르고 치료방법도 전혀 없단다. 뇌신경마비로 시작하여 하반신마비 전신마비 언어장애 호흡근마비로 이어져 인공호흡에 의존하다 끝내 사망에 이른다고 했다.
십칠 년간 투병에 팔년간 대소변 받아내기가 짧다고 산소 호흡기를 씌워 오년 째 식물인간으로 산다. 친구는 모진 삶을 홀로 지켜보고 있다.
일 년에 서너 번 만나는 모임에도 빠지거나 아니면 밤늦게 왔다가 새벽차로 올라간다. 뒤를 보아줄 사람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면전에서 위로한다고 묻기가 미안하다. 친구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표정하나 흩어짐이 없다. 우리는 입을 모아 칭송한다. 열부라고, 그리고 그의 입장에 서 본다.
얼마 전 인공호흡기를 언급할 때 그는 “그걸 떼면 죽는데 어떻게”
그러면서 아내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가치 없는 삶일지라도 다시 이 길을 기꺼이 택하겠다고 하였다.
그의 일과는 30분마다 기저귀 갈아주기, 수시로 먹여주고 서너 번씩 대변 받아내기, 일으켜주고 마사지하기, 일방통행 대화하기란다.
제대로 누우면 잠이 깊이 들어 일어나기 힘드니까, 맘 놓고 구들장에 등대고 뻔 좋게 자본 적이 없다고 했다.
친구의 자녀 결혼식에 축하차 잠시 나온 그 친구에게 구세(口勢)가 거칠기로 말마디나 하는 친구가 한마디 쏟아붓는다.
“야, 임마, 느 각시는 언제 죽는 다냐?”
참으로 듣기 민망한 섬뜩한 말이다. 모두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나무랐지만 그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살 닿으면 따뜻한데 그나마 없으면 어떻게 살지 싶어? 있을 때 잘 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침묵만 흘렀다.
얼마 전에 삼년여 치매로 투병 끝에 어머니를 여읜 선배를 만났다.
“여보게, 벽에다 똥칠을 하고 며느리를 걷어차며 자식을 끌어안고 ‘뽀뽀’를 하실지라도 어머니라 부를 수 있는 어머니가 있었으면 좋겠네.”
그 순간 그에게서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절규와 같은 부르짖음 그리고 눈가에 맺힌 빨간 눈물을 보았다.
친구나 선배의 그 허한 가슴을 무엇으로 다 채울까?
나는 그들에 비할 수 없는 축복을 지금 듬뿍 받고있는 게다. 그런데도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아니 어머니나 아내에게서 무언가를 더 바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축복이 무엇이고 감사가 무엇이고 행복이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