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5·18인권 유린 배상 청구권 소멸 판결에 "국가폭력 면죄부"
  • 호남매일
  • 등록 2023-07-03 00:00:00
기사수정
  • 광주고법, 5·18 정신적 손배 소멸시효 지났다는 정부 항소 인용 민변 "보상금 지급 아닌 헌재 위헌 결정 나온 시점부터 계산을"

항소심 법원이 5·18 정신적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 5·18유공자 유족이 소송을 늦게 제기해 배상 청구권이 사라졌다는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국가 폭력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소멸 시효 제도라는 법적 안정성보다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의 국가배상 청구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있었는데도 신속한 권리 구제를 해야 하는 정부의 책임을 면해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고법 제2민사부(양영희·김진환·황진희 고법판사)는 고 노준현 열사(1956~2000)의 친형 노씨가 정부를 상대로 낸 5·18민주화운동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노준현 열사는 국민교육헌장 비판 집회를 주도하고 5·18민중항쟁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내란부화수행죄 등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606일 동안 불법 구금·고문당했다.


노 열사는 1997년 재심을 청구했고, \"신군부의 헌정 질서 파괴 범죄에 정당하게 맞섰지만, 불법 체포·구금·고문당했다\"며 무죄를 선고받았다.


노 열사의 유족은 2021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보상금을 받으면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손해배상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한 5·18보상법 16조 2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같은 해 11월 이번 민사 소송을 냈다.


노 열사의 구금 전후 국가안전기획부의 장기간 불법 사찰·감시를 받으면서 기본권을 침해당한 친형 노씨는 1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2심에서 패소했다.


2심 재판부가 \"노씨가 소송을 늦게 제기해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이면서다.


정부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손해·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안에 행사해야 한다는 민법을 토대로 소멸 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다.


노 열사가 민주화운동 보상금 지급 결정을 받은 1994년이 지나 노씨가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한 만큼, 배상 청구권이 사라졌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주면서 \"불의한 국가 권력이 저지른 반인권 범죄에 면죄부를 주고, 국가폭력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씨가 2021년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5·18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권 행사 여부를 알 수 없었는데 법원이 소멸 시효 기간을 내세워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홍현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광주전남지부 부지부장은 \"노 열사의 정신적 위자료 청구권은 소멸 시효에 걸리지 않는데, 형인 노씨의 청구권만 시효에 걸린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노씨의 소멸 시효 시작점은 노 열사가 5·18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받았을 때가 아닌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온 2021년으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독재 정권이 초헌법적인 공권력을 행사해 기본권을 침해한 민주화운동에 개인 간 불법행위 내지 일반적인 국가배상 사건에 대한 소멸 시효를 그대로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송창운 민변 광주전남지부 사무처장도 \"노씨를 비롯한 5·18 희생자 유족들은 법률 전문가가 아니어서 자신에게 고유한 위자료 청구권이 있는지 잘 알 수 없다. 국가폭력 사건에서 정부가 보상금 지급 시점을 기준으로 정신적 손해배상의 소멸 시효 시작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배된다\"며 \"유족의 위자료 청구권을 구체화하는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5·18 유공자와 달리 유족에게만 소멸 시효가 지났다고 항소한 것도 \'이중 잣대\'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1·2심 모두 5·18 피해 당사자에게는 소멸 시효 완성을 항변하지 않고, 부모·배우자·형제 자매들에게만 소멸 시효가 지나 청구권이 사라졌다고 항소하고 있다.


실제 정부는 이 사건과 5·18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1950~1980) 유족을 비롯해 일부 5·18 유족들의 정신적 손해배상 1심 결과에 불복, 소멸 시효 완성을 이유로 항소를 제기했다.


홍 부지부장은 \"정부가 2심에서야 갑자기 소멸 시효 완성을 항변한 것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소송의 완결을 지연시키게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민사소송법 149조 2항에 따라 법원이 소멸 시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법부가 소송이 늦을 수밖에 없었던 과거사 사건의 특수성을 폭넓게 해석하고, 정부의 신속한 권리 구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차종수 5·18기념재단 기록진실부장은 \"헌정 유린 범죄는 진실이 드러나도 시간이 한참 흐른 뒤라서 시효라는 벽에 막힌다. 법원이 정부의 소멸 시효 완성 주장을 받아준 것은 인권 보호 책무를 망각하는 것이고, 2차 가해를 저지른 것\"이라며 \"반인륜 국가폭력 범죄에는 국가배상 청구권과 수용 범위를 폭넓게 해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5·18 당시 학살의 진상을 은폐한 국가가 뒤늦게 청구권 소멸을 주장하며 정신적 손해에 대한 채무 이행을 거절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라며 \"정부는 신속한 권리 구제가 정답임을 알면서도 책임을 저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시스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정치 인기기사더보기
모바일 버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