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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게 되어버렸어’
  • 호남매일
  • 등록 2023-07-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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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7월에 되자 M은 하얀 치자꽃을 그늘에 말려 편지 속에 보내왔다. 치자 향기 속에 M의 오랜 우정이 느껴진다. 노랗게 말라버린 치자 꽃잎을 책갈피에 넣어두었다. M의 정성이 깃든 고운 마음만큼이나 우리의 우정도 노란 치자꽃처럼 묵은 삶이 엿보인다.


M에게 치자꽃 향기 답을 보내기 위해 난 무얼 보낼까? 고민만 하다 일주일을 보냈다. 가끔은 마음을 써준 이가 버거울 때가 있다. 이유는 답이 부족할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 보내준 이의 정은 오래도록 가슴이 기억하고 있다.


M에게 감사한 마음을 ‘살게 되어버렸어’ 사연으로 답한다. P의 이야기다. P는 시 낭송으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울림이 있다.


모처럼 P와 길동무를 하게 되었다. 문학을 사랑하는 O도 귀중한 시간을 내어 함께 했다. 문학 소모임에서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시로 우리를 안내한다. P의 마음을 움직이는 목소리와 눈빛은 좌중을 시의 세계로 안내한다. P가 들려주는 시를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치유가 된다.


두 번째 일정은 중천에 있던 태양이 하오로 넘어서자 무안 사거리 반점으로 달린다. 무안 사거리 반점에는 시인과 주방장이 음식을 만들고 노래도 하며 시도 쓴다. 사거리 반점의 짬뽕은 맛집으로 전국에 소문이 났다.


장맛비에 쭉 늘어진 구름도 쉬어 가는 하오 다섯 시가 되어 시와 노래를 사랑하는 일행이 도착하였다. 무안 고구마밭이 펼쳐지는 벌판에서 이 자리를 마련한 무안 댁의 독무대가 시작되었다. 정호승의 ‘수선화에게’ 노래다.


하늘도, 들판도 고요하다. 그녀의 목소리만이 무대를 수놓는다. 어쩌다 길동무였던 필자의 마음도 서산으로 넘어가는 햇살에 몸을 맡기며 힐링의 시간을 갖는다.


P는 사람을 치유한다. P를 만나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놀라운 능력이 생긴다.


P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언어는 “살게 되어 버렸단게” 라는 말이다. 긍정의 에너지를 주는 “살게 되어버렸어”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준다. 우리는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아픈 상처가 아물어 갈 때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 아픔을 노래와 시로 달랜다.


윤수자 시인의 ‘상처는 아물 때가 더 아프다.’ 시다.


‘삶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시기는/ 어떤 일로든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가 아니고/ 아물어 갈 때다./ 습관에 젖지 말고/ 아는체 하지 말고/ 심한 간지러움을 잘 참아내야 한다./ 그 시간이 더 아프고/ 그 시간이 더 괴롭고/ 간절하기 때문이다./ 흔적이란 바로 그때 생기는 것이니까/ 상처는 아픈 시간의 아름다운/ 열매다.’ 윤수자 시인의 삶의 질감이 드러나는 시를 읽으며 상처는 삶을 견디는 시간이라 생각해 본다. 아물어진 상처의 흔적을 품고 사는 이는 누구나 시인이다.


P가 있는 곳에는 나눔이 있다. 음식을 나누고, 마음을 나눈다. 먼길을 달려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상처를 안아주는 곳에 P가 있다. P는 하얀 천에 바느질로 정성스럽게 만든 보자기를 나누어 준다. P의 작은 보자기를 받는 순간 상처가 아물어진다. 보자기는 상처 싸개다.


P의 마음 나눔에 순간 부끄러웠다. 그동안 교육 현장에서 지식만을 전달하려고 했던 내 무지에 대해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마음을 함께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되돌아오는 허허함을 감당하지 못해 어느 순간, 마음의 빗장문을 닫고 살았던 삶이 부끄러워 무안 사거리 반점 고구마밭 벌판에 살짝 던져 놓았다.


무안 사거리반점 탁자에 앉아 별을 무대 삼아 시를 낭송하고, 그림책을 읽는 이의 눈빛은 세상이 어둠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시간이었다.


중간 초대 가수는 사거리 반점의 김경만 주방장의 노래와 김을현 시인의 기타로 한판이 벌어졌다. 무안 바닷가의 갯바람이 불어오는 밤, 치유의 시간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슴은 따뜻했다.


노란 치자 꽃잎 같은 인연이 된 시 낭송과 P와 끈을 연결한 문학인 O와 어쩌다 길동무가 되어 함께 한 시간은 상처가 아물어 가는 시간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상처가 아문 흔적이 헤집어질 때 응원해 주는 P의 언어가 자꾸 입에 맴돈다. “살게 되어버렸어.” 만나서 좋은 시간에 P는 오늘도 석사 박사보다 더 위대한 일을 했다. ‘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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