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 전범 기업을 대신해 강제노역 피해를 배상하겠다고 낸 공탁 과정에 법원의 보정 권고를 연이어 따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지법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이춘식(103) 할아버지에 대해 신청한 배상금 공탁을 재차 보정 권고했다고 17일 밝혔다.
광주지법이 이 할아버지에 대한 공탁 신청을 보정 권고한 것은 지난 3일에 이어 두 번째다.
광주지법은 두 차례 모두 주민등록초본이 누락돼 공탁 서류를 접수하지 않았다.
정부와 재단 측이 필수 서류를 제출하라는 법원 권고를 따르지 않은 셈이다.
앞서 정부와 재단 측은 상속인이 아닌 숨진 피해자(피공탁자가 될 수 없음)를 대상으로 공탁을 신청하거나 필수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 전주·수원지법에서도 잇따라 보정 권고·불수리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이에 공탁 규칙을 충분히 살피지 않고 졸속으로 절차를 밟은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일본 전범 기업(미쓰비시중공업·일본제철)의 채무를 면제해 주려고 급하게 배상 절차를 마무리 지으려 했다가 혼선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정부의 무리한 공탁 신청은 비상식적이다. 제3자 변제를 거부한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공탁은 무효이자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 3월 대법원 배상 확정판결(2018년)을 받은 강제노역 피해자와 유족 15명의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피고인 일본 기업 대신 재단이 지급한다는 3자 변제 해법을 내놨다.
발표 이후 원고 15명 중 11명이 이 해법을 수용했지만, 생존 피해자 2명(양금덕·이춘식)과 사망 피해자 2명(박해옥·정창희)의 유족들은 수용을 거부하고 있다. 일본 측의 사실인정과 사과가 없는 3자 변제안을 수용할 뜻이 없다는 내용 증명을 재단에 보내기도 했다.
광주·전주·수원지법(평택·안산지원 포함) 공탁관들은 재단 측의 3자 변제 공탁 신청 10건 중 8건을 받아들이지 않는 불수리 결정을 내렸다. 민법 469조상 피해자 의사에 반해 제3자인 재단이 일본 전범 기업을 대신해 배상금을 지급하거나 공탁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중 광주지법에 접수된 양금덕 할머니 공탁 건은 불수리 이의 신청을 거쳐 민사 44단독 재판장이 불수리 결정의 적법 여부를 심리하고 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