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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새야 나의 노래를 들어다오’
  • 호남매일
  • 등록 2023-08-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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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카리브해 해변이 보이는 쿠바로 여행하고 싶어 사진만 몇 번이나 들추어 보고, 지도를 뒤적거리다 잠이 들었어. 잠이 들어도 음악은 계속 흘러나왔어. 밤새 라디오를 틀고 잠이 든 것처럼 스마트폰은 쿠바의 말레콘 비치 영상을 재생하고 있었지.’


이름 아침에 일어나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했다. 길고 긴 장마가 끝났다. 습한 공기에서 벗어났나 싶더니 뜨거운 열기의 태양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이 여름을 어떻게 이기지. 여름에는 북쪽으로 피했다가 다시 우리나라로 와야 하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지인과 함께 더위를 피해 미술관으로 산책을 떠났다.


남원에 있는 김병종 미술관에는 ‘길 위에서’ 남미부터 북아프리카까지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요즘 전시 주제가 길 위에서라는 문장이 많이 보인다.


길, 누구나 여행을 떠나고 싶은가 보다.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도. 그리고 울 동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내문에 있는 이름 모를 작가의 전시도 길 위에서라는 제목이다.


김병종의 그림은 바다 위에서라고 해도 좋겠다. 카리브해에 한 소년이 뛰어들고 있는 팜플렛을 보고 있으면 잠시 더위를 잊는다.


김병종 전시실 공간은 마음에 든다. 김병종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동백꽃과 조우 되는 쿠바의 모습은 한국의 겨울과 남미의 더위가 오마주 되는 묘한 기분이랄까?


벽면 한쪽에 그 나라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귀에는 익숙하지만 내가 모르는 지역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 어깨춤을 춘다.


김병종은 붉은 동백꽃 한지를 펼쳐 바르고 그 위에 색을 입히는 작업을 한다. 야자수 나무 아래서 춤을 추는 사람과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붉은 동백이 툭 던져져 있는 느낌은 남쪽의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이글거리는 태양 같기도 하다.


하지만, 추위를 이겨내고 피어난 동백꽃을 본 순간 무더운 여름이 순간, 사라진다.


김병종 작품은 동양화가서인지 몇 번을 전시를 만나도 편안한 느낌이다. 그 자리에 앉아서 오랫동안 작품을 감상하면 눈이 신선해진다. 김병종이 떠난 곳은 튀니지, 모르코, 알제리 등 특히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카리브해, 지중해다.


그의 작품 앞에서는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고 있으면 된다. 야자수 나무 아래에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음악을 들으면 아픈 것도 사라진다.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는 지중해를 둘러싸인 공간이 우리와 낯 설은 느낌은 신비로운 이국땅을 만나 볼 기회를 준다. 언젠가는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나라, 알제리다.


길 위에서 그림을 보고 있자니 그림 속에 한 마리의 새를 볼 수 있다. 7월 초 북유럽 패키지여행을 했다. 패키지여행을 하면 자유 시간을 준다. 자유 시간이 좋은 것은 편안한 마음으로 그들과 스며드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패키지여행에서는 보물 같은 시간이다. 보물 같은 시간이 주어질 때면 나도 모르게 나오는 문장이 있다. ‘모르는 새야 나의 언어를 들어다오. 나의 노래를 들어다오.’ 혼자서 중얼거린다.


모르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 내 언어를 듣는 시간은 행복하다. 김병종 화가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내 노래를 들어다오. 이야기를 들어다오 혼자서 중얼거리며 아무도 모르는 낯선 도시에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누구나 기회가 된다면 이번 여름이 가기 전, 김병종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새를 발견하면 모르는 노래를 불렀으면 한다.


카리브해가 보이는 바다 창가나 지붕 위에서 노래하는 새를 보게 되면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애잔함이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정리가 안 될 때 중얼거린다.


삐아제는 혼잣말이라고 하였다. 비고츠키는 내면의 언어라고 했다. 그것은 자신만의 언어적 구조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김정운은 ‘에디톨로지’ 책에서 ‘인간은 텍스트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내가 이야기하는 ’나‘ 가 바로 나다.’ 라고 하였다.


김병종 길 위에서 그림을 떠올리면서 잡생각을 하게 된다. ‘모르는 새야 나의 노래를 들어다오.’ 글을 쓰고 있는 순간도 머릿속에 날아다니는 언어를 정리하는 시간이다.


나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글을 읽고 “그래 네 말에 일리가 있다.” 라고 생각한다면 래포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니 부디, 내 이야기를 들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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