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전남 여수시 화양면 한 조생벼 농가에서 이곳 주인 윤성현(62)씨가 전날 태풍에 쓰러진 조생벼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2023.08.10.
\"추수까지 딱 20일 남았었는데....\"
제6호 태풍 \'카눈\'이 전남 여수를 거쳐 북상한 10일 오후 여수시 화양면.
이곳 백초마을에서 20여 년 넘게 조생벼를 길러온 윤성현(62)씨는 전날 불어닥친 태풍이 야속하기만 하다.
알곡이 서서히 여물기 시작한 조생벼들이 한밤중 세차게 불어닥쳤던 비바람에 우수수 허리를 꺾으면서다.
윤씨는 허리 꺾인 조생벼들이 들어찬 논 앞에서 쪼그려 앉더니 거친 오른손으로 푸릇푸릇한 알곡을 쓰다듬었다.
\"조금만 버텨주지\"라고 야속한 푸념 한마디를 내뱉었지만 태풍이 몰고 온 세찬 바람 소리에 이마저도 묻혔다.
백초마을에서는 윤씨를 비롯한 6개 농가가 전체 3㏊ 규모로 조생벼를 키우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이달 말 조생벼 추수를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전날 거센 비바람이 이같은 일정을 어그러뜨렸다.
전날 백초마을을 할퀸 강풍은 3㏊ 규모 조생벼 중 절반을 넘어뜨린 것으로 잠정 파악됐다. 윤씨가 가진 조생벼 논 규모 1㏊ 중에서도 절반 이상이 도복 피해가 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생벼가 태풍에 넘어지는 피해는 최근 5년 이내 처음이라고 윤씨는 설명한다. 이처럼 태풍이 이른 계절 여수를 강타한 적이 드물었던 탓이다.
지난해 불어닥친 힌남노의 경우 조생벼 수확 직후인 9월 초께 불어닥친데다 여수를 비껴 나가면서 당시 추수를 앞뒀던 만생벼에 대한 피해도 거의 없었다.
농작물 보험을 들어둔 덕에 빈손은 면했지만 이제는 이상기후로 인한 잦은 태풍 피해가 염려된다.
비바람이 멎고나면 일손을 모아 성한 벼를 세울 예정이지만 제 값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도 토로한다.
윤씨는 \"태풍이 일찍 왔지만 경남 지방에 상륙한다는 예보로 피해가 덜할 줄 알았다. 난데없는 큰 도복 피해에 당황스럽다\"며 \"벼멸구 방제 작업도 수월히 마친 터라 별다른 피해가 없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추수 철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정 면적 수매가의 최대 60%까지 보전해주던 보험금 규모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와중에 이같은 태풍 피해가 매년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벼를 세워도 알곡에 물이 들어찬 탓에 얼마나 수매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앞서 여수에서는 화양면 나진리 일대 0.5㏊에서도 도복 피해가 집계됐다.
백초마을 일대의 도복 피해 규모가 합산될 경우 피해 규모는 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날 광주·전남에 불어닥친 태풍은 지역에 시설물 파손 등 70건(광주 12건·전남 58건)의 사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