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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바이러스가 번졌으면'
  • 호남매일
  • 등록 2023-08-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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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번짐 _장석남 作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 - 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2001년>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전염병은 모두 ‘바이러스’를 통해 옮아간다. 그러니까 바이러스는 참 나쁜 녀석이다. 하지만 좋은 바이러스도 있다. \'웃음 바이러스\'. 한 사람의 웃는 얼굴이 다른 사람에게로 \'번져가\' 행복을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번짐, 어릴 때 붓글씨 쓰려 습자지에다 먹물 묻혀 쑥 그으면 종이에 빨려들 듯이 번져가던 그 까만 먹물들의 번짐. 봄에 활짝 핀 목련꽃이 번져 사라지면 이내 여름이 된다. 그 꽃이 사라져 그 자리가 열매로 번지면 가을이 된다. \"너는 내게로 /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되는.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 즉 사랑은 번짐이다. 번짐은 번져가고자 하는 쪽에서의 움직임 못지않게 받아들이는 쪽에서의 자세도 중요하다. 살아 있는 나뭇가지는 잘 휘어지지만, 죽은 나뭇가지는 휘어지지 않고 대신 부러진다. 달리 말하면 살아 있는 영혼은 잘 번지나, 죽은 영혼은 번지지 않는다. 웃지 않는 얼굴을 보면 근육이 죽어 있다. 죽은 근육은 아무리 재미난 우스개를 들어도 웃음이 번지지 않는다. \"번짐, / 번져야 사랑이지 /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사랑은 번짐이다. 번짐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나아간다. 밀어내고 부드럽게 떠나고 밀려 들어오는, 그 \'어쩌지 못하는 사랑\'. 스밈과 어울림, 나눔도 그렇다. 스며야 번지고, 어울려야 함께 환해진다. 오늘 이 시를 읽은 분들 입가에 미소가 살며시 번지면, 그 번짐이 곁의 소중한 사람에게로 번져가면, 그래서 온 누리로 번져 꽃을 피웠으면 한다. 번짐, 참 고운 말이다.


장석남(1965년생)


인천 덕적도 출신으로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특이한 경력으로는 박철수 감독의 불교 영화인 \'성철\"에서 성철스님 역을 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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