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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 지나간 자리에 꽃이 핀다
  • 호남매일
  • 등록 2023-09-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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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붉은 고추가 열렸다. 올해는 작년보다 작황이 좋지 않다. 작년 이때쯤인가? 주렁주렁 열린 붉은 고추를 보면, 꼬부라진 고추만큼 세월의 고개를 넘은 어머니가 새벽부터 자루 들고 밭에 나가 고추 따는 일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는 벗의 하소연이 떠오른다.


올해는 이상기온 현상인지 몰라도 비가 자주 내린다. 늦여름 장마가지 온다하니 밭작물이 걱정이다. 계속되는 빗줄기에 작물이 실한 열매를 맺지 못했다. 참깨, 깻잎, 고추를 보더라도 작년만 못하다.


먹고 사는 일에 신경을 쓰는 어르신은 좋은 고추를 어디서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걱정이 태산이다. 예상치 못한 날씨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이 한둘이 아니다.


9월이 되면 배추 모종을 심어야 한다. 계속되는 더위에 배추 모종이 썩어서 걱정이다는 시골 농부의 이야기, 참깨를 털어야 하는데 알맹이가 없다며 걱정인 할머니의 푸념을 들으면서 인간사 사는 일에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먹고 사는 일인가 보다.


지난 8월 말에 올라온 기사다. 비가 쏟아지는 날 폐지를 줍는 노인에게 우산을 씌워주면서 길을 걸어가는 여성의 이야기다. 빈 수레를 끌고 가는 할아버지에게 작은 우산을 씌워주느라 자신의 어깨 위에 비 맞는 것도 개의치 않고 함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빈 수레였지만 할아버지의 마음은 훈훈한 길이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우산 든 여성’ 기사 댓글을 보면, ‘울 할아버지 생각납니다.’, ‘요즘 보기 드문 따스한 사연에 눈물 납니다.’ ‘하나의 우산으로 같은 길을 걸어가다 보면 우리는 희망을 만난다.’ 등 댓글은 유독 덥고 습한 여름철에 마지막 무더위를 이겨 내는 훈훈한 이야기는 나눔이 지나간 자리에 아름다운 가슴꽃을 피웠다.


그동안 우산에 대한 기사는 많았다. 비오는 날 기상 개스터가 비를 맞고 일기예보를 하자 지나가는 행인이 우산을 씌워주는 장면은 많은 이에게 웃음을 주었으며, 충북 진천에서 차관이 발표하는데 보좌진이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쳐주는 모습은 황제의전이라는 질타를 받았으며, 강아지가 비를 맞고 있자 지나가는 어린이가 강아지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이야기 등 우산 에 관한 이야기는 다양하다.


지인의 우산에 대한 이야기다. 비가 오는 날, 우산 없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어떻게 집을 가지”,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을 하며 버스에서 내렸는데 누군가 우산을 씌어 주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같은 동네에 초등학교 남자동창이었다. 서로 말없이 지내던 사이였는데 우산을 씌어준 인연이 가슴꽃이 피어 부부가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 장년층은 1970년대 학교가는 길에 비가 오더라도 우산이 없어 책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뛰었던 생각을 하며 우산에 대한 다양한 추억을 떠 올렸을 것이다.


지금은 다양한 우산이 나와 집에 한두개 정도는 있지만 어린시절 아침 등굣길에 좋은 우산을 쓰고 가려고 형제들과 실갱이를 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섬뜩하고 무서운 사건이 많아 낮길, 밤길 무섭다. 아침 등굣길을 나서는 자녀에게 항상 길조심, 사람조심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여성은 길을 걷다가도 누군가 따라오는 것 같으며 길을 멈춰서 주변을 살피는 것이 일상화 되어버린 각자도생의 시대에 동요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라는 노래가 들릴 것만 같은 훈훈한 소식에 불안한 마음을 내려 놓기도 한다.


도종환 시인의 ‘우산’ 시다. ‘혼자 걷는 길 위에 비가 내린다/ 구름이 끼인 만큼 비는 내리리라/ 당신을 향해 젖으며 가는 나의 길을 생각한다/ 나도 당신을 사랑한 만큼/ 시를 쓰게 되리라/ 당신으로 인해 사랑을 얻었고/ 당신으로 인해 삶을 잃었으나/ 영원한 사랑만이/ 우리들의 영원한 삶을/ 되찾게 할 것이다/ 혼자 가는 길 위에 비가 내리나/ 나는 외롭지 않고/ 다만 젖어 있을 뿐이다/ 이렇게 먼 거리에 서 있어도/ 나는 당신을 가리는 우산이고 싶다/ 언제나 하나의 우산 속에 있고 싶다’ 혼자 길을 가더라도 나에게 우산을 받쳐줄 누군가 함께 길을 걸어가는 동행이 있다는 것은 외롭지 않은 길이다.


가을이 저만치 오는 시기에 풍성한 들판의 곡식이 잘 여물길 바라며 그동안 줄기차게 내렸던 빗줄기도 잠시 멈추어 농작물을 수확하시는 농부의 땀방울만큼이나 바구니에 그동안 정성이 가득 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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