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너릿재 옛길을 걸었다. 너릿재에는 길을 걷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산책하며 체조를 하는 사람, 편백나무 숲에서 간식을 먹는 사람 등 누구나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집과 가까운 곳에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오랜만에 걷는 너릿재에 꽃무릇 꽃대가 올라와 산책길이 즐겁다.
화순에서 출발하여 광주 쪽으로 걷는 길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다. 그러므로 산책을 하면서 따르릉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벗과 함께 길을 걸으며 이야기하다 뒤에서 오는 자전거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런데 뒤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아줌마 길 전세 냈어요.” 순간, 뒤를 돌아보았다.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오셨다. 깜짝 놀라 길을 비켜섰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뒤에서 미리 신호를 주면 될 것인데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대화의 톤과 상황에 불쾌한 산책길이 되었다. 인간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이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일상적인 언어를 통해 대화하는데 예상하지 못한 언어폭력은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잘 알고 있는 가족으로부터, 때로는 전혀 모르는 상대에게 들은 언어로 마음 상하고 분노하며 속앓이를 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언어는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예상하지 못한 언어를 들으면 어떻게 대체할지 몰라 당황하기 쉽다.
너릿재 산책길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은 벗도 투덜거리는 분노와 상처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딸 아이와 함께 분식집에 들어가 김밥과 라면은 먹고 돌아서는데 김밥 사장에게 딸 아이가 인사를 했다. 그런데 옆에 식탁에 있던 할머니가 갑자기 “아이고 딸이 날씬하고 예쁘네. 그런데 엄마는 왜 뚱뚱해.” 순간, 얼굴은 웃고 있으나 속마음은 당황했다고 한다.
할머니의 무례한 언어를 듣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행동하였으나 며칠 동안 마음이 불편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계속 이어가는 말은 할머니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할머니 옆집에 사는 이웃이 병원비를 계산한 영수증을 내밀자 마당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 본즉 “아니 자네와 나 사이가 이것뿐인가 십육만원도 아니고 만육천을 주라고 하는 것이여.” 라고 자신의 영수증을 던진 언어 속에 할머니는 너와 나 사이에 진한 정은 합리적인 사고는 아니다.
자신이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간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이 먼저다. 그리고 내준 병원비는 당연히 주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일방적인 사고로 서운하다고 감정을 표현하는 자세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할머니는 아직도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않은 유아기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상대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하였다. 그는 언어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형성하고 심오한 방식으로 우리의 존재를 드러낸다고 믿었으며, 인간은 자신이 언어를 형성시키고 주인인 양 행세하지만, 사실은 언어는 인간의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의미를 필자의 소견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쓰는 언어는 결국 자신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어는 생각과 삶인 것이다.
필자가 평소 존경하는 선배 O는 언어가 곱다. 타인에게 전화가 오면 상대방을 배려하는 언어의 톤은 옆에서 듣는 사람도 마음이 편안하다. 통화를 마무리하는 언어도 정겹고 고맙다. “OO님, 오늘도 그대 옆에 있는 한 그루의 나무입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언어로 인사를 마무리하는데 평소에 인간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깃들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을 생각하면서 따스하고 울림이 있는 언어는 상대를 감동하게 하며 겸손을 배우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하는 언어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진실함이 묻어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사람을 당연히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현종 시인의 ‘글쓰기’ 라는 시 한 편의 구절이 생각난다. 누군가 글을 왜 쓰냐고 물음에 그는 ‘자칫하면 나의 안팎 어두워지니까.’ 라는 문장에 감탄해 보며 나의 안과 밖 환해지는 빛을 만들어가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