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조 구례군청 건강관리과장
매년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노인의 날은 경로효친 사상을 앙양하고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온 노인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정부에서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이에 즈음하여 각 읍면 단위로 노인들을 위한 경로위안잔치가 개최되고 있다.
행사장에 가보면 경로행사가 노인을 위한 잔치인지 시장·군수, 지방의원나 기관단체장을 위한 행사인지 아리송하다.
수백 명의 노인들이 다 모였어도 자치단체장이 도착하지 않았을 경우 행사 시작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시장·군수의 의전 절차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도 행사 시간에 임박하여 맞추어 도착한다.
그리고 아무리 행사장이 혼잡하여도 시장·군수 차량, 이른바 1호 자동차는 현관 입구까지 다가가서 단체장을 하차 시킨다.
시장·군수의 머릿속에 한적한 외곽 주차장에 차량 두고 걸어서 가겠다는 생각은 없다. 그들이 선거에 당선된 순간부터 사라졌다.
행사가 시작되면 이른 아침부터 와서 기다린 노인들은 안중에도 없고 이제 막 도착한 시장·군수, 지방의원들을 일일이 소개한다.
예전에는 의원들은 일괄 소개했는데 몇 년 전부터는 한 명씩 개별 소개한다.
그 사유는 시장·군수는 노인의 날 행사를 치르도록 예산을 지원해 주었고, 지방의회에서는 그 예산을 의결해 주었기에 그들을 극진히 모셔야 한다고 한다. 내년 행사를 위해서…
소개 순서는 시장·군수가 제일 먼저이고 노인들의 대표인 노인회장은 한참 뒤에 호명된다.
행사 주최 측 입장에서는 노인들의 대표는 힘없는 기관단체장 중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음식을 차례 놓고 말라비틀어지도록 기다린 주인공은 생각지 않고 시장·군수, 지방의원들의 인사말이 지루함을 보탠다.
올해부터는 도의원 인사말도 한 술 더 붙었다. 자치단체장과 같은 정당 소속이라 하여 윗분의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이쯤되면 노인의 날 행사가 노인을 위한 행사가 아니고 시장·군수나 지방의원들이 폼, 가우다시 잡고 위세 날리고 얼굴 알리기 위한 잔치이다. 주객전도(主客顚倒), 본말(本末)이 전도되었다.
읍면별로 거의 대동소이한 천편일률적인 경로행사가 매년 10월경에 개최된다.
그러나 이 중에 특이한 진행이 있어서 알리고자 한다.
구례군 문척면 경로잔치이다.
모든 읍면이 군수를 제일 먼저 소개하는데, 문척면은 행사 주인공 노인들을 먼저 알렸다.
맨 먼저 행사의 주인공인 500여 명의 노인들을 소개했다. 다음에는 노인들의 대표인 노인회장이였다. 그다음에 군수를 소개한 것이다.
좌석배치도 노인회장, 군수, 의원 순으로 배치했다.
문척면의 노인의 날 행사만이 경로잔치 목적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문척(文尺) 글월문 자척 글의 척도, 문향의 기준이 무엇인지 아는 고장 다운 모습이다.
장유유서(長幼有序)와 예(禮)를 구한다는 구례 고을의 뜻에 걸맞게 행동한 것이라고 사료된다.
문척은 구례에서 제일 주민이 적지만, 제일 예를 아는 고장이다.
문척면서 머슴살이한 면장으로서 나의 흔적과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