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친구야 네가 사는 곳에도 눈이 내리니?” 이곳은 아직은 가을과 겨울 사이에 있다. 12월이 오기 전 마지막 단풍을 만나려고 화순 너릿재를 찾았다. 모처럼 찾은 숲길은 흙이 돋아져 맨발 걷기를 위한 길로 조성되었으며, 어느새 낙엽은 화석이 되어 있다.
그동안 지천에 두고도 와보지 못했던 너릿재는 많은 변화가 일었다. 너릿재는 광주와 화순을 잇는 길로 산 위로 순환도로가 생겨 평일에도 가벼운 운동과 산책하기 좋다.
광주와 화순의 접변 지로 길은 하나지만 서로 다른 풍경을 가지고 있지. 이번에는 화순에서 담장 쌓고 벤치를 놓고 주변을 조성해 우리를 반겨주고 있다. 너릿재는 아직도 붉고 푸른 단풍나무를 볼 수 있어 만족한 산책길이다.
12월이 시작되는 주말에는 가을이 빠져나가는 사이에 어느덧 들어선 겨울 입구에서 그동안 가보지 못한 풍경을 만나러 장구목을 향했어. 간혹 날리는 눈발이 흐르는 강물 위로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해 준다. 섬진강은 외롭게 흐르고 있다. 강물 속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다 순창 용궐산을 바라본다.
창문을 열어 강바람을 맞으며 억새의 춤사위도 보고, 훌러덩 옷을 벗은 팽나무 꼭대기를 바라보니 겨울이 나무 끝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해마다 이곳을 오는데 새로운 집들이 들어서 산골에도 마을이 형성되는 것을 보며 머릿속에는 잡다한 생각이 가득하다.
장구목 농가 맛집 주인댁은 오랜만에 찾은 손님을 반갑게 맞아준다. 마당에는 배추가 쌓여 있고 집안에는 겨울 김장을 위한 젓국 냄새가 구수하다. 그동안 잊고 있던 기억의 맛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주인댁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시간을 보낸다.
창밖으로 강물은 흐르고, 하오 세시쯤 되자 강아지는 주인댁과 손님 사이에 자리를 잡고 능청스럽게 잠을 청하고 있다.
농가 맛집을 방문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때는 자연밥상이 주메뉴였다. 주인댁은 들과 산으로 다녀 제철에 맞는 재료를 준비해 꽃 밥상을 차려 주었다. 그동안의 먹었던 음식은 그리움이 되어 뇌의 한 부분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농가 맛집도 2년 뒤에는 사라진다. 이곳에 도로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세월이 노동을 감당하기 힘들어 접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친구야, 그러고 보니 우리 주변에 맛집이 사라져 간다. 옛것을 유지하며 자연이 주는 선물을 그대로 간직한 철학이 담긴 밥상이 하나, 둘 사라져 갈 때마다 안타깝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연히 맛보았던 엿을 몸이 기억해 행사장마다 엿판을 기웃거리며 그 맛을 찾았던 순창 할머니의 엿도 올해부터 맛보기도 힘들게 되었다. 노환으로 전통 엿을 만들기가 힘들여 포기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변 사람들도 안타까워했단다.
12월에 해야 할 일은 김장이다. 김장은 고향의 텃밭에서 가꾼 배추, 고추, 당근, 대파 등이 바다와 만나 버무린 김치는 감칠맛이 입안에 돈다. 김장을 가지고만 온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시골은 이른 새벽부터 김치를 버무리기에 내가 도착할 즈음은 일은 다 정리되고 품앗이로 온 아낙들은 막걸리 한잔에 된장에 푹 삶은 수육 한 점을 먹고 있는 시간이다.
엽서를 쓰고 있는 시간에 벗에게 연락이 왔다. 김장을 버무리기를 도와 달라는 톡이다. 교사인 벗은 오후에 김장한다.
이른 점심을 먹고 나주로 출발했다. 텃밭에서 농사를 지은 재료로 김장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는 것도 즐겁다. 나주로 이사 온 첫해에 농사를 지어 김장을 백 포기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해마다 김장이 줄어든다. 그만큼 김치를 먹는 양이 줄어든 것이다.
요즘은 빵을 먹는 사람, 탄수화물을 줄이는 사람이 많아 김치를 먹을 일이 없게 된 것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건강식품으로 김치가 대세라고 하는데 김장을 버무리며 다시 밥과 김치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겠지,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김장이 끝나가고 있다. 어쨌거나 좋은 먹거리가 사라져 간다는 것은 안타깝다.
친구야, 12월이 가기 전 해야 할 일은 그동안 감사한 분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는 일이며,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는 것이다.
콘서트에서 노래도 부르며 음악에 몸을 싣고 1년 동안 열심히 살았던 나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 볼까 한다. “친구야 네가 사는 곳에도 따뜻한 겨울이었으면 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