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준 식 시인·작사가
공항은 연중 북새통이다. 한국의 패키지여행은 그만큼 명성을 날리고 있다. 어느 나라이건 명승지엔 한국인 판이다.
여행사 깃발을 든 가이드를 따라가다 보면 아리랑도 불러주고 애국가도 연주해준다.
그들의 상술이라 생각하면 씁쓸한 뒷맛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 우리 국력의 저력이 느껴지는 것 같아 자부심도 생겼다.
이번 여행지는 미국이다. 개화기에는 두려운 존재로, 최근에 와서는 거대왕국으로 성장하여 세계를 마음껏 주무르고 있다. 그 미국을 가보기로 한 것이다.
보이는 것 하나하나가 새롭고 부럽다. 가도 가도 끝없는 지평선, 광활한 벌판 그리고 심지어는 데스벨리사막까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천혜의 자연과 풍부한 지하자원. 어느 것 하나 빠진 것이 없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수록 부러움의 나라다. 선택받은 나라, 신이 내린 축복의 땅임에 분명하다.
그들이 어떻게 사는가? 그들이 왜 잘 사는가? 그들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그들의 생생한 모습을 주마간산 격으로나마 확인해 보고 싶었다.
짧은 일정 속에서 선 긋듯 스침이기에 무엇을 얼마나 보고 느끼며 어떤 결론을 얻어낼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러기에 더욱 설렌다.
때마침 백인들 사이에 끼어 어린아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여인이 보인다. 순간, 뭉클한 가슴이 이 땅의 참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나에게 물었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쳐 평화를 여지없이 짓밟고 뭉개버리는 기마병이 보인다.
화친을 자청하고서 손 내민 원주민 추장을 향하여 난사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정든 고향을 떠나 사막 저 너머 골 깊은 계곡의 ‘인디안 보호구역’으로 강제이주를 당하여 눈물길을 걷는 인디언의 모습도 보인다.
누가 누구를 보호한단 말인가? 보호라는 말이 나를 혼돈케 한다. 이제 와 그걸 꼭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허지만 그들이 내몰려 숨어 산 그 골짜기를 지나노라니 흑인 팝가수 마헬리아 잭슨이 부른 ‘어메이징 그레이스’ 가락이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사회나 역사 시간이면 주인 없는 땅을 찾아낸 위대한 사건으로만 배웠다.
원주민을 학살하고 주권을 빼앗고는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외쳐대는 정복자들의 오만한 모습은 보지 못했다.
물론 대를 이어 제 땅을 일구며 대대로 지켜온 짙은 황갈색의 저 옛 주인도. 이제는 그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현란한 불빛만이 몽환인 양 빛나고 있다.
지금 그들은 남의 집 문전을 배회하고 있다. 그들의 남루한 옷차림과 늘어진 어깨에서 역사는 강한 자 뜻대로 써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읽게 된다.
그들을 통하여 나는 잠시 우리의 오천 년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어두운 근대사를 생각했거나 강대국에 끼어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역사는 무상이라 흐르며 들은 척도 안 하는데…
환생한 공룡 앞에서 인간의 가치가 언제 천수(天壽)를 다할지 의문을 던지며 다음 여정에 마음을 올린다.
-하나님의 정죄定罪 -
이 세상 거두는 날 둘러앉은 배심원들
옳거니 그르거니 왕배덕배 맞서거니
지은 죄 없는 자 나와 돌로 치라 하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