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연필은 누구나 처음 만나는 필기구다. 첫돌을 맞이한 돌잡이에도 연필을 두는 것은 인간이 처음으로 접하는 필기도구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입학은 한 아이에게 부모는 정성스럽게 연필을 깍아서 필통에 넣어주며 아이가 학교생활을 잘하기를 기도한다.
초등학교의 기억이다. 농경문화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하는 시기로 학용품이 풍족하지 않았다. 시골 문방구에 있는 연필은 향나무 연필 십원, 문화연필 이십원 했던 것 같다. 학교 가기 전 연필을 깍아서 필통에 담아두면 마음이 편안했다.
6학년 신학기였다. 새 짝이 필통을 열었는데 검정 동아연필이 필통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처음 본 연필이었다. 그토록 매력적인 검정을 처음 본 것이다.
내 연필은 노란빛을 가진 문화연필인데 이보다 한 단계 더 좋은 연필을 가진 친구의 문구용품이 부러웠다. 연필은 나와 한 몸이 되어 새로운 생각과 사고를 여는데 항상 함께였다.
연필은 창작의 도구다. 하얀 백지에 검정의 중심으로 오로지 몸의 중심으로 자신을 그려내고 표현해낸다. 그러므로 예술가에게 있어 연필은 자신과 같이한다.
창작의 도구, 연필작가 박소빈을 시립미술관에서 만났다. 용의 화가 박소빈은 세계 미술 무대에서 쌓아온 명성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보여주고 있다.
연필로 그려진 용의 작품 앞에서 멈춤의 시간을 갖는다.
보도된 인터뷰 기사를 보면, ‘2024년 갑진(甲辰)년 청룡의 해를 맞아 신작 용의 부활, 무등의 신화는 광주 무등산 줄기에서 시작된 민주주의 영혼으로부터, 새로운 신화, 즉, 여기 광주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부활이라는 신화를 창조하고자 합니다. 처음 전시되는 대형 애니메이션 작품 미르 사랑, 용의 무한한 신화는 용의 무한한 사랑의 에너지를 입체적인 영상으로 제작, 인간 세계의 새로운 신화창조를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관람객과 소통합니다.’는 박소빈은 용 그림을 그리게 된 이야기를 알려준다.
이번 전시에서 의미가 있는 것은 2017년 북경 금일미술관에서 49일간 진행됐던 현장 퍼포먼스로 완성된 17m의 대형 작품과 부석사 설화, 코로나 상황에 갇혀 있던 공간에서 주문처럼 연필로 씌어진 글과 그림은 힘들고 외로웠던 고난의 삶이 결국 작품이라는 아름다움의 광경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박소빈 작가의 연필 부산물을 통해 끊이지 않는 예술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용의 해에 용의 꿈틀거림을 연필 하나로 생동감있게 표현한 대작을 보면서 연필은 창작의 도구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박소빈 작가의 그림에서 에곤쉴레의 표현의 자유를 보여준 인간의 육체, 클림트가 색으로 표현한 관능적인 예술을 박소빈은 연필 하나로 관능과 섬세한 표현을 보여주어 완성도 높은 화가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특히, 부석사 ‘용의 신화 무안한 사랑’은 선묘와 의상대사의 사랑을 보여주는 대작을 보면 여인의 머리카락이 용이 되어 바다를 지키는 선묘의 지고지순하며 끊임없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박소빈 작가는 연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연필은 나의 발상의 시작이며, 그 상상의 에너지다.’
박소빈의 작품 앞에서 지우개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상상과 작품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이 오로지 연필의 중심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작가의 상상, 사고의 순간들이 손, 발, 팔, 다리, 육체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지는 예술인 것이다.
한가지의 연필의 색이 백지에 펼쳐진다. 연필 하나로 그리움과 사랑을 표현한 그녀의 드로잉 기법은 수많은 연필 밥들이 용으로 승화되어 상상의 동물과 인간을 조우한다.
연필 창작의 도구는 무등을 넘어, 용의 신화의 무한한 사랑은 이제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머윈 시인의 ‘연필(씌어지지 않은 것)’의 한 부분이다. ‘이 연필 안에는 한 번도 씌어지지 않은 단어들이 웅크리고 있다. 한 번도 말해진 적 없고 한 번도 가르쳐진 적 없는 단어들이 그것들은 숨어 있다.’
연필은 정신의 도구, 창작의 도구, 상상의 에너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