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봄이면 무작정 길을 나서도 여기저기 연두빛이 가득하다. 섬진강에 머물렀던 봄은 어느덧 전라북도 진안 깊은 산골짜기를 넘어서고 있다. 이런 날 생각나는 두보의 시다. ‘꽃 한 조작 떨어져도 봄빛이 줄거늘 수만 꽃잎 흩날리니 슬픔 어이 견디리’ 견디기 힘든 봄 날이다.
이맘때쯤이면 생각나는 봄 풍경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광주에서 출발해 담양, 남원, 장수, 무주를 거쳐 도착한 곳은 진안이다.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은 산이 깊어 봄이 늦게 오는 지역이다.
가는 길마다 산벚꽃이 아름다워 길을 가다 멈춘다. 진안으로 가는 길에 마지막 벚꽃은 꽃보라가 되어 산화한다. 꽃잎 흩날리니 슬픔도 깊어진다.
진안으로 가는 길에 올리브색을 담은 나무를 눈이 짓무르도록 봐도 질리지 않는다.
4월은 잔인한 달인가 보다. 가슴속에 묻혀 있던 슬픔이 싹이 나듯 돋아난다. SNS에 올라온 기사를 보니 세월호의 아픔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팽목항으로 발길을 옮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월호가 10년이 되었다. 2014년에 우리는 놀라운 사건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 아무도 믿지 않았다. 설마 대한민국 안전 시스템이 이렇게 무너져 버렸단 말인가? 의아해하면서 안타까운 청춘을 잃어야 했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과 작별한 그들은 이제 20대 후반이 되었다. 작가 김훈은 슬픔도 풍화된다고 했다. 그러나 풍화된 슬픔도 오랫동안 가슴속에 맺혀 있다가 그때가 되면 돋아나고 있다.
진안 가는 길에 꽃잎이 산화하는 슬픔과 세월호의 슬픔을 구분하지 못하며 울음을 머금고 꽃길을 달리고 달린다.
진안 천반산 가막리들의 봄은 이미 와 있었다. 몰 오른 나무에 산벚꽃이 버즘이 되어 온 산을 뒤덮고 있는 풍경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산벚꽃이 어우러진 산 아래 강변에는 물이 버드나무를 감싸고 있었다. 가막리들을 걸었다. 햇살이 강변에 내리쬐어 조팝 꽃, 민들레도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가막리들 25분 정도 걷는 강변길에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강과 들, 정적만이 함께 한다. 그 고요한 정적 속에서 생명은 움트고 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이고 진 쑥 보따리를 짊어진 노부부를 만났다.
강변 들판에 새로 돋아난 모든 것들은 식량이 되고 삶의 터전이 된 것이다. 천반산을 바라본다. 햇살이 더 머물다 간 곳에는 봄이 한창이지만 햇살이 덜 던 곳에는 봄이 멈추어 있다. 몇 해 전부터 봄이 되면 몸이 먼저 길을 안내하는 천반산 가막리들에 서 있지만 한해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슬픔도 풍화되는 천반산 아래 가막리들 봄 길을 걷는다. 세월호의 아픔을 되새기며 걷는 길에서 그 슬픔이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을 알기에 길을 걸으면서 봄을 맞는다.
인생은 살아갈수록 고단하며 쓸쓸해지나보다. 천반산은 세상 속에 숨어 있는 산이다. 산이 강을 안고 강이 산은 안는다. 산자락마다 마을이 숨어 있다. 숨어 있는 강변에 물 나무가 피어오르고 봄은 저만치 비켜 서 있다.
천반산 가막리들에 인공이 펼쳐놓은 아름다운 풍광이 있다. 물길을 잡아 농사를 짓게 하려고 했던 곳에 닭 볏을 닮은 소나무가 이 산하를 지키고 있다.
천반산 가막리들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을 담기에 4월의 햇살이 강하다. 4월에 이렇게 따뜻한 날은 기상센터 통계에 세 번째로 기록되었다. 작년만 해도 바람막이 외투를 걸쳐야 했던 날씨인데 4월 11일은 입던 옷을 어깨와 허리에 두른다.
4월에 바람이 이는 곳에 그늘이 있는 곳에 발걸음을 멈춘다. 4월의 봄은 잔인하다. 일장춘몽의 봄을 보내야 하며 세월호의 아픔을 견뎌내야 한다. 봄이 가는 것처럼 세월호의 아픈 상처도 서서히 아물기를 바라지만 4월이 되면 새록새록 돋아난다. 우리의 삶이 끝날 때까지 안고 가야 할 아픔이다.
하오가 되어 광주로 오기 위해 진안에서 장수로 빠져나오는 벚꽃 가로수 길에 벚꽃잎이 휘날린다.
휘날리는 벚꽃을 바라보면 “안녕” 봄 인사를 한다. 꽃잎이 날려서 슬픈지 세월호의 아픈 상처가 돋아나서인지 가슴이 아린다.
‘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 세월호 추모 시집에 들어 있는 시 한 편이다. ‘그 언니는 단원고 학생이었다. 그 아이에게 말을 걸어야겠는데 오늘은 아니고 내일 오늘은 말 거는 연습을 해야겠다.’ 봄날의 슬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