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그리움이 언어가 되었다. “4월 좋은 날에 소풍가세나.” 봄꽃이 화르르 졌지만 연두빛 물오른 나뭇가지를 보니 아직은 봄은 남아 있나 보다. 이 봄이 가기 전에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 봄나들이를 나섰다. 연두빛은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반겼다.
오랜만에 만난 B는 보자마자 함박웃음을 짓는다. B의 언어와 몸짓에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그동안 무덤덤하게 살았던 삶을 반성이라도 하는 듯이 B의 표정을 따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O는 꽃무늬가 아름다운 멋진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환한 봄날에 여인들은 아직 남아 있는 봄을 찾아 북쪽으로 달렸다. 자동차는 구담마을을 향해 달렸다. 길가에 핀 노랑 애기똥풀꽃이 봄날의 풍경을 말해준다. O는 가지마다 연두빛이 열렸다며 연초록으로 변해가는 산하를 바라보며 ‘봄날은 간다’ 노래를 부른다.
이 봄을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린다.’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오랜만에 만남이라 안부를 묻고, 사는 이야기 하다가 어느덧 임실 마을에 도착했다. 아무리 좋은 풍경도 식후경이라 임실 덕치 장암길에서 차를 멈추었다. B의 몸보다 더 무거운 가방에서 나오는 작은 소품과 음식은 진풍경이었다. 매트를 깔고 그 위에 꽃무늬 식탁보를 깔았다. B
가 내놓은 음식을 바라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동그란 애호박부침, 계란말이, 김치, 고추, 된장, 딸기, 토마토 샐러드, 딸기, 굴비, 밥, 반찬과 밥, 도시락을 싼 보자기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번 만남에서 놀라운 것은 누룽지다. 따스한 보온 밥 통에 싸 온 숭늉을 컵에 따랐다. 숭늉을 받아 든 순간, 심장이 쿵 소리를 낸다. 가방 안에서 이렇게 많은 것들이 펼쳐진다는 것이 놀랍다. 밥상을 다 차린 B는 작은 꽃병에 데이지꽃을 꽃아 세팅을 마무리하였다. 아름다운 밥상을 보고 함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다. 연초록으로 물든 산하를 보면서 먹는 음식은 봄을 먹는 것 같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제야 강물 소리가 들렸다.
봄날, B가 차려준 식탁은 봄의 풍경을 닮아 충만한 식사였다. 점심을 먹고 B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봄빛이 주렁주렁 매달린 강과 들을 바라보았다.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혀 있을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짐을 챙겨 물길을 따라 아래로 달렸다.
구담마을 정자에 앉아 봄바람을 만났다. 순창과 임실을 돌아가는 물줄기를 바라본다. 아홉 개의 골짜기마다 봄이 가득 차 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아름다운 봄날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어떻게 보내는 것이 안타까워 강물과 바람을 보면서 하염없이 인사를 던진다. 아름다운 산하를 보면서 B가 함민복 시인의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시를 낭송한다.
‘배가 더 기울까봐 끝까지/ 솟아오르는 쪽을 누르고 있으려/ 옷장에 매달렸어도/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으며/ 나 혼자를 버리고/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갈등을 몰리쳤을, 공포를 견디었을/ 바보같이 착한 생명들아! 이학년들아! / 그대들 앞에/ 이런 어처구니 없음을 가능케한/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시간은, 우리들의 세월은/ 침묵은,/ 반성도 부끄러운 죄다/ 쏟아져 들어오는 캄깜한/ 물을 밀어냈을/ 가녀린 손가락을/ 나는 괜찮다고 바깥세상을 안심시켜주던/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물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보았을/ 공기 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아, 이 공기,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우리는 가슴에 아픈 씨앗을 품고 산다.
사월이 되면 돋아나는 아픔은 아름다운 봄 길에서 더 미안한 사월이다. 이 봄을 보는 것도 미안해 잠시 눈시울 붉힌다. 먼 산에 꽃가루가 날리는 것인지 내 눈에 안개가 낀 것인지 자꾸만 눈앞이 아른거린다. 사월은 우리의 가슴에 가시가 돋아난다. 사느니라고 잊고 있던 내 가슴에 숨어 있던 가시는 봄 길을 달리는 동안에도 찌른다.
먹먹한 가슴은 숨쉬기도 힘든 사월의 시간을 갖는다. B가 가져온 봄 식탁도 O가 흥얼거렸던 봄 노래도 가시에 묻혀버린 4월에 긴 호흡을 한다. 봄 길을 달리며 우리는 실컷 울고 푸른 하늘을 본다.
이번 소풍은 그리움이 만든 언어로부터 출발하였다. 봄 길을 달리며 환한 봄 속에서 아픈 4월의 기억에 슬픔이 아른거리는 봄을 만났다. 언제쯤 아픈 상처가 아물 수 있을까? 아름다운 봄 길에서도 가끔은 숨쉬기도 힘든 4월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