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봄날, 건강한 삶을 위해 밤마다 운동을 한다. 옆 동에 사는 K와 함께 호수공원에서부터 출발해 물길을 따라 걷는다. 유치원을 지나 냇가까지 작은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의 손길인지는 몰라도 작은 푸성귀를 심어놓은 길거리 텃밭을 만난다.
새순이 나고 벚꽃이 피고 지고 오동나무꽃이 피는 날이다. 며칠 전에도 없었던 상추가 쑥 올라와 있다. 고구마순도 자리를 잡았다.
이 작은 텃밭에도 갖가지의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봄의 성스러운 장면을 만나는 것 같아 작은 소리를 지른다. “상추가 올라왔네. 그 옆에 고구마 순, 고구마 순 옆에 무순도” 식물의 성장은 보는 것만 해도 경이롭다.
봄은 경이로운 계절이다. 꽃 지면 무엇을 볼까 하지만 꽃 지고 나니 연두빛 가지 사이에 열매가 맺혔다. 우리 아파트에 매실나무에도 매실이 주렁주렁 열렸다. 올해는 작년보다 많이 맺힌 것 같다.
시골 아버님 댁에 들렀다. 작은 앞마당에 텃밭에는 꽃과 채소가 같이 심어져 텃밭인지 꽃밭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뒤쪽 한 뼘 남짓한 텃밭에는 잘 자란 푸성귀와 함께 철쭉이 활짝 피었다. 그 텃밭이 있는 곳에서 어린 시절을 살았다.
어린 시절의 집은 우물이 있는 곳에 장독대가 있었으며 장독대 뒤로 작은 텃밭이 있었다. 자투리땅이라 햇볕도 잘 들지 않았다. 겨울이면 한쪽에는 김장독이 묻혀 있었으며 그 옆에 한 평도 안 되는 땅이었던 것 같다. 그 한 뼘 남짓한 텃밭에는 갖가지의 푸성귀가 자라고 있다.
봄날이면 부추가 까까머리 중학생 머리 자라나듯이 올라왔다. 이른 아침에 부엌에서 반찬을 만드시던 어머니는 무침에 들어갈 부추를 베어오라고 한다. 작은 바구니 들고 부추를 자른다. 그 작은 텃밭에 나온 부추는 부침개를 해서 먹었으며, 다양한 요리에 재료가 되었다.
꽃밭이 되었으면 하는 그 텃밭이 생각나는 봄날은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다. 여기저기서 꽃 축제를 보기 위해 발걸음 팔아 축제를 다녔다. 갖가지의 아름다운 꽃은 봄날 사람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더 아름다운 꽃밭은 아버지 꽃밭이다. 올겨울에 일본에 갔다. 집마다 작은 정원을 잘 가꾸어 놓았다. 어쩜 이렇게 작은 화단을 집 앞에 잘 꾸며 놓았는지 놀라움이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 화단을 오랫동안 보니 금세 시들어졌다.
우리네 마당이 있는 집에 돋아난 꽃밭이 더 소담스러운 것은 자연스러움에 있는 것 같다.
몇 해 전에 아버지는 연로하셔서 시골에 들어가셨다. 아버지는 시골에 가시자마자 오빠 부부가 농장일로 바쁜 틈에 돌보지 못한 화단에 있는 풀을 뽑아버렸다. 모처럼 시골집에 들렀을 때 깨끗한 화단을 보고 “화단이 깨끗해졌네”라고 하자 오빠는 아버지가 풀을 뽑다가 국화까지 다 뽑아버렸다며 하소연했다.
오빠의 하소연을 들어주면서 아버지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올봄 아버지의 꽃밭에 갖가지의 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부추, 상추, 시금치, 파 푸성귀가 올라와 있었다.
오빠 부부가 농장에 가면 아버지 혼자 집에서 소일거리를 하신다. 연세가 많은 분이라 약간의 치매가 있지만, 아침마다 꽃밭에서 풀을 매고 작물을 가꾸시는 일터가 있어 노년에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
아버지의 텃밭은 소담스럽다. 너무나 소탈해서 입가에 웃음이 번질 정도다. 집에 오는 사람마다 화단이여 텃밭이여 묻는다. 그러면 오빠 댁은 그 텃밭에서 나오는 채소가 우리 집 일 년 식량이지라며 웃는다. 아버지는 농촌에 살다가 광주로 이주했다.
그런데 노년이 되자 건강이 나빠져 혼자 삶을 유지할 수 없어 아들 내외가 있는 고향으로 다시 들어가셨다. 아들과 친구 삼아 잘 지내신다. 한 번씩 고향 집에 들리면 오빠 내외는 아버지가 벌려 놓은 일을 고자질한다.
한번은 비닐하우스에 있는 풀을 정리한다고 집으로 가지고 가셨다. 아버지의 기억은 망옷(거름)을 만들 생각이셨나보다. 젊어서 농사지었던 그때 기억을 하고 계신 것이다. 버려야 할 풀을 다 마당에 쌓아 놓았으니 오빠 내외의 일거리를 더 만든 것이다.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면 같이 지내는 것이 참 효도라는 생각을 해본다.
텃밭이 되어버린 화단은 봄이면 갖가지의 채소로 우릴 반긴다. 옹기종기 무리 지어 돋아나는 갖가지의 채소를 볼 때면 사랑스럽다. 꽃보다는 채소를 더 볼 수 있는 화단에 아버지 노년의 삶이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