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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꽃 필무렵
  • 호남매일
  • 등록 2024-06-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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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유월의 햇살은 싱그러운 바람과 함께 다가온다. 유월은 보리밭 사잇길로 불어오는 바람결에서 종달새 노랫소리에 반가운 손님이 올 것 같아 고개 내밀어 푸르른 하늘을 만나 본다. 금물결 넘실거리는 들판을 지나다 보면 어느덧 계절은 여름으로 접어든다.


5월은 장미의 향기가 꽃밭을 가득 채운다. 고장마다 아름다운 꽃으로 많은 사람을 여행객으로 부르는 꽃 소식을 듣는다. 순천만 국제 정원 박람회에도 많은 사람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정원도 품격을 갖추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월의 보리밭이 황금빛으로 변하는 시기에는 수국꽃이 필 무렵이다. 꽃으로 인연을 맺은 지인이 수국꽃 필 무렵이면 한번 들리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당에 30 여종의 수국을 심어 정성을 다해 가꾸는 모습을 알고 있어 6월은 꽃향기는 어김없이 바람을 타고 왔다.


5월은 계절은 여왕이며 꽃은 장미다. 온 고장마다 꽃축제를 한다는 편지가 날아온다. 수국이 필 무렵이면 우리 집에 놀러와 하는 지인의 따스한 언어가 생각나 무작정 발걸음을 남쪽으로 향했다.


올해는 날이 따스해 수국이 일주일 먼저 개화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기대감이 컸다. 그런데 수국꽃이 아름드리 피어 있는 앞마당에서 먼저 발견한 것은 장미였다. 핑크빛이 감도는 장미가 기품이 있어 눈을 끌기 충분했다. 지인은 크리스티나 장미라고 알려주었다.


한 가지에 한 송이 꽃을 피우는 장미중에 장미로 크리스티나 이름이 붙여진 이유가 있었다. 영국 오스틴 장미로 영국과 스웨덴이 우호 통상조약을 기념하기 위해 17세기 스웨덴 여왕의 이름을 붙여 크리스티나 장미라고 명명하였다.


또 다른 이름은 ‘퀸오브 스웨덴’이다. 크리스티나 장미의 매력은 몇 번의 개화 과정에서 색이 미묘하게 변한다는 것이다. 지인은 수국이 필 무렵에 온다는 벗을 위해 크리스티나 장미를 보여주고 싶어 정성을 다해 데드 헤딩 해주어 이렇게 아름다운 장미를 만나게 된 것이다.


영국과 스웨덴이 수호통상으로 맺어진 인연으로 새로운 이름으로 탄생한 크리스티나 장미꽃 이야기를 하면서 마시는 얼그레이 차 한잔은 달콤하고 행복한 유월의 시간을 갖는다.


유월의 보리밭 사잇길로 여름이 오고 있다. 수국꽃 필 무렵에 장미 이야기는 삶에 작은 행복을 안겨준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목표 지향적인 삶도 중요하지만 소소한 과정에서 행복한 시간을 얻는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릴스를 보게 되었다. 4년 전에 했던 ‘날 녹여주오’ 드라마에서 8살 조카와 삼촌의 대화다. “삼촌 나 오늘 받아쓰기 70점 맞았어.” 삼촌이 “잘했네. 앞으로 노력해서 100점 받도록 해.” 그러자 8살 조카가 “괜찮아 받아쓰기 안 중요해” 삼촌 왈 “그럼 뭐가 중요하지.”라고 묻자. 조카가 “100점 맞은 애보다 행복하게 살면 돼”라고 대사를 들으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100점은 인생을 살면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100점 받으려는 노력을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서 찾으면 되지 않을까? 인생을 살면서 소소하고 재미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작은 것에서 삶의 보람을 찾는다.


수국이 필 무렵이면 우리 집에 놀러와라고 했던 지인은 시골로 이사 갔지만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새롭게 만난 꽃 품종을 키우는 즐거움과 새벽이슬을 맞으며 풀을 뽑고 꽃에게 말을 거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이와 반면에, 경주에 사는 후배는 작년에 주워온 은행을 화분에 심었는데 싹이 났다며 전화로 알려와 은행 씨앗을 칭찬하며 즐거워한다.


이처럼 인생은 각자의 삶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서 삶의 가치를 찾는 것이다.


푸른 바다 빛을 담은 파란 수국꽃이 활짝 웃는다. 바다의 깊은 수심을 담아 품었다. 함바가지 만한 푸른 꽃을 보고 있으며 바다를 보고 있는 듯하다. 유월의 햇살 아래 수국꽃을 바라본다. 이름도 수국(水菊), 물을 좋아하는 국화다. 파란 물을 담은 수국꽃은 냉정, 거만, 교만이라 하는 다소 차가운 꽃말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매력이다.


수국꽃 필 무렵에, 또 하나의 기억을 끄집어 내본다. 작년 이맘때쯤 보슬비가 내리는 날, 보성 윤제림에서 수국밭에서 찍은 몽환적인 사진을 보면서 인생은 때로는 그 아련한 그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긴 여정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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