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당시 기획재정부가 장기 재정전망(국가채무비율)을 의도적으로 축소·왜곡했다는 의혹이 감사원 감사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홍남기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국민적 비판을 우려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두 자릿수로 낮추도록 구체적인 방법까지 조목조목 지시했고, 나주범 당시 재정혁신국장(현 교육부 차관보)은 홍 전 부총리의 부당한 지시에 단 한 번의 반론을 제기하지 않은 채 실무자들의 수차례 반대에도 그대로 이행했다.
감사원은 4일 이같은 내용의 \'재정관리제도 운영실태 감사\' 결과를 공개하고 홍 전 부총리의 비위 내용을 인사혁신처에 통보해 재취업·포상 등을 위한 인사자료로 활용하도록 통보했다고 밝혔다. 나 차관보에게는 주의 요구하도록 했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정부는 5년마다 장기 재정전망을 실시해야 한다.
장기 재정전망은 현 제도·정책이 유지될 때 미래의 재정 상태를 진단하는 것이 목적으로, 그 결과를 토대로 지출 구조조정과 연금 개혁 등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정책 방안을 마련하게 돼 전망의 객관성·투명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정부 의지(처방)가 개입되지 않도록 하는 게 원칙이다.
기재부는 지난 2020년 7월7일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최소 111.6%, 최대 168.2%로 산출되는 것을 확인했다. 9일 뒤 시뮬레이션 결과인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153.0%(당초 검토안), 129.6%(신규 검토안)로 구성된 장기 재정전망(안)을 홍 전 부총리에게 보고했다. 신규 검토안은 안일환 당시 기재부 2차관 보고 과정에서 홍 전 부총리에게 여러 안을 보고하도록 함에 따라 추가된 것이었다.
그러나 홍 전 부총리는 보고받는 자리에서 \"129%의 국가채무비율은 국민이 불안해한다\"면서 국가채무비율 급증에 대한 비판을 우려해 2060년 국가채무비율을 두 자릿수로 낮추도록 지시했다. \'재량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에 연동한다\'는 핵심 전제도 \'총지출(의무지출+재량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의 100%로 연동\'하는 것으로 변경하도록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다.
이에 당시 재정기획심의관이 전제를 변경하면 \'재량지출 증가율이 음수(재량지출 감소)인 구간이 나타난다\'고 우려하자 홍 전 부총리는 \"왜 불가능한 일이냐. 재량지출 증가율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도 정부가 충분히 의지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다그치며 재차 지시했다.
반면 재정혁신국장이던 나 차관보는 홍 전 부총리에 단 한 번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은 채 실무자들의 수차례 반대에도 \"국가채무비율을 줄이면서 재량지출이 줄면 안 되느냐\"고 반문하며 강행했다.
나 차관보는 특히 전망 전제·방법이 장기재정전망협의회의 심의·조정사항임을 알면서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그 해 8월19일 협의회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바꾼 뒤 \'총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 100%에 연동\'하는 부당한 전제를 적용해 산출한 국가채무비율 전망치인 81.1%를 홍 전 부총리에게 보고했다.
나 차관보가 적용한 전제는 미래 정부의 지출을 현재의 문재인정부가 제한한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장기재정전망의 원칙 및 취지에 위배된다. 게다가 저출산·고령화로 의무지출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총지출을 경제성장률에 연동시키면 일정 시점 이후에는 의무지출이 총지출을 초과(재량지출이 음수)하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
하지만 홍 전 부총리는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 같다\"며 전망 결과를 승인했고, 9월2일에 그대로 최종 발표해 다음날 국회에 제출했다.
나 차관보는 전망 결과 발표 전 국가채무비율 축소를 위한 전제·방법 변경이라는 비판이 예상된다며 \'총지출 증가율=경제성장률\' 전제가 합리적이라는 대응 논리까지 만들어둔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이 조세재정연구원과 함께 정당한 전제·방법에 따라 장기재정전망을 다시 해 본 결과,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148.2%로 도출됐다.
한국재정학회는 감사원에 \"기재부가 적용한 전제는 국가채무비율을 낮추기 위해 총지출 증가율을 경상성장률로 통제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거꾸로 찾는 과정을 거친 것으로 판단된다\"는 자문 의견을 줬다.
감사원은 \"홍 전 부총리는 외부 비판 등을 우려해 2060년 국가채무비율을 두 자릿수로 축소·왜곡함으로써 장기재정전망의 객관성·투명성 및 정부의 신뢰를 훼손했을 뿐 아니라 장기재정전망의 조기경보 기능을 무력화해 국가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조치가 지연될 우려를 초래했다\"고 꼬집었다.
감사원은 또 기재부가 예비타당성(예타)조사 면제 제도를 부실 운용해왔다며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을 통보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