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 언젠가부터 귀에 박히게 들었지만 요즘 들어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밖에서 사먹는 국밥 한 그릇, 아침을 기분 좋게 시작하게 해주는 사과 한 알, 어김없이 날아든 냉난방 요금 고지서. 역세권은 일찌감치 포기한 조그마한 보금자리 전세금마저도 공포의 대상이 되어간다.
5년 전 갑작스럽게 맞이한 \'코로나19\' 사태 속 우리 소비지형은 자·타의적 변화를 겪었다. 이후 정신을 차려보니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있었다. 언제부터 얼마나 오른건지, 오르지 않은 것은 정말 없는 것인지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를 통해 조금 더 살펴보자.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4.09로, 1년 전보다 2.7% 올랐다. 소비자물가지수의 기준시점은 코로나19 사태가 본격적으로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친 2020년이다. 2020년 연평균 물가지수를 100으로 두고 평균적인 가격변동을 측정했다.
다시 말해, 지난달 우리 소비자물가는 4년 전인 2020년보다 14% 이상 올랐다는 뜻이다.
주요 지수 등락률을 살펴보니 신선어개(생선·해산물), 신선채소, 신선과실 등 계절 및 기상조건에 따라 가격변동이 큰 55개 품목으로 이뤄진 \'신선식품지수\'가 무려 17.4% 올랐다.
구입 빈도가 높고 지출비중이 높아 가격변동을 민감하게 느끼는 144개 품목으로 작성된 \'생활물가지수\'도 3.1% 올랐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공표된 소비자물가지수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전체 조사 대상 458개 품목 중 기준치인 100(2020년) 아래인 지수가 있을까하고 말이다.
소비자물가지수가 100을 밑도는 품목은 총 36개. 100을 유지하고 있는 금융수수료는 제외했다. 전체 품목의 7.8%가 4년 전보다는 가격이 떨어진 것이다.
이 중 생활물가 품목은 3분의 1 수준인 12개다.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가격하락 품목은 전체 품목의 2.6%에 불과했다는 의미다.
그럼 도대체 어떤 품목이 4년 전보다 저렴해진걸까? 총 10개 품목은 농·축·수산물에 해당하는 품목이었다. 채소 중에서는 상추(89.79)와 시금치(81.33), 부추(95.68), 호박(91.58)이 100을 넘기지 않았다.
과실 중에서는 망고(85.93)와 아몬드(96.02)가 100을 밑돌았는데, 과실류의 경우 망고와 아몬드가 떨어진 정도보다 사과(189.73), 배(212.71), 복숭아(198.24), 귤(238.71) 등 주요 품목들의 오른 정도가 너무 컸다.
인삼(95.07)과 국산쇠고기(99.40), 게(92.17), 전복(96.24)도 4년 전보다 저렴해진 것으로 집계됐다.
밀가루·라면·우유 등 가공식품(119.22)은 단 한 품목도 100 아래를 기록하지 못했다. 냉장고(97.48), 선풍기(92.87), 공기청정기(96.97), TV(92.32) 등 주요 가전 10개 품목은 조금씩 떨어졌다. 코로나 사태로 가격이 치솟았던 마스크(70.85)를 비롯해 의료측정기(99.09), 조제약(95.83), 병원약품(95.12), 병원검사료(61.22)도 4년 전보다 가격이 떨어졌다.
이 외에도 사립유치원의 무상교육 영향으로 유치원납입금(64.97)과 부동산 중개수수료 체계 개편으로 부동산중개수수료(92.28), 자동차 보험사들의 인하정책으로 자동차보험료(94.54)도 100을 밑돌았다.
아울러 독서실비(99.54), 이러닝이용료(98.57), 승용차임차료(95.75) 등 코로나 사태로 촉발된 높은 가격대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경우도 찾아볼 수 있었다.
다양한 이유로 가격 하락이 발생했지만 상당 부분이 코로나 사태의 영향과 정책 변화 등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소비 지형 변화가 본격화됐던 2020년과의 비교는 내년까지만 이뤄진다. 통계청은 5년마다 기준치를 개편하고 있는데, 2020년 다음은 2025년이기 때문에 이미 기준치 개편을 위한 준비작업에 돌입한 상황이다.
내수 회복세 지연 속에서 우리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도 물가는 잡히긴커녕 품목을 바꿔가며 오르고 있습니다. \'두더지 게임\'이라는 비판이 나온 이유일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체감 인상폭이 더 클수밖에 없는 신선식품, 생활물가 위주로 물가가 오르고 있다는 것이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공공요금 인상을 틀어먹고 유류세 인하조치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연명은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이미 한계에 다다른 실정이다.
서민경제와 나라살림, 모두를 이끌고 가야하는 정부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두더지를 잡기보다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묘안이 너무나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