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무더운 여름날 옥수수 하모니카 불며 하늘을 바라본다. 오락가락 내리는 비가 얄밉다가도 메말라 있는 접시꽃을 보니 한바탕 내리는 소나기가 반갑다. 소나기 덕분에 타오르는 열정도 잠시 내려놓는 여름날에 빗줄기 바라보며 옥수수를 먹는다.
비가 오는 주말에 연극을 보러 궁동 예술의 거리로 향했다. 희망문화 컴퍼니 대표 임준형 감독이 몇 년 전에 공연했던 연극이 다시 리메이크되었다. 연극은 가장 가까이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예술이라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작은 소극장으로 향했다.
연극을 사랑하는 지인이 안내한 ‘목욕탕 부루스’ 는 휴먼 코미디로 80년대 풍경을 가진 도시의 변두리 목욕탕에서 사람들이 만나 애환이 펼쳐지는 이야기로 서민들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몇 년 전에 공연된 작품을 다시 선보이는 연극을 통해 소나기 맞은 것처럼 시원한 하루였다.
공연 목욕탕 부루스는 사우나, 스파에 의해 밀려난 허름한 공간이다. 목욕탕 주인 이규만 사장은 왕년에는 러시아 유학까지 다녀온 잘나가는 세신사였으나 이제는 자신과 함께 늙어버린 목욕탕을 지키고 있다. 노래주점을 하는 박사장은 목욕탕 단골이며 지인이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생활하는 덕수는 월권을 끊어 목욕탕에서 샤워하며 경비를 아끼고 몸과 마음으로 노래하는 시인은 삶과 가치를 시에서 발견하는 철학자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픈 상처 회복을 위해 세신사를 꿈꾸는 청년 영호는 ‘희망목욕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사람이 오는 목욕탕으로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아 유튜브를 제작하고 목욕탕 부루스를 힘차게 부른다. 목욕탕 부루스는 ‘사람은 누구나 때가 있다.’ 는 슬로건이 있다. 목욕탕 주인인 이규만 사장은 몸의 때보다는 마음의 세신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점점 사라져 가는 목욕탕의 문화를 지키고자 한다.
이번 휴먼 코미디 연극 목욕탕 부루스는 관객과 호흡하는 공연을 통해 모든 사람이 흥미 있게 참여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목욕탕 부루스 노래를 부를 때면 관객과 하나가 되어 손뼉을 치며 한바탕 웃는 시간이었다. 목욕탕은 평등의 공간이다. 옷을 벗으면 누구나 다 같다. 일상의 삶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본 목욕탕은 사람들의 갖가지의 애환이 서려 있다.
목욕탕에 관한 공연을 보니 백희나 작가의 ‘장수탕 선녀님’ 그림책이 떠 올랐다. 백희나 작가의 목욕탕도 90년대 목욕탕 풍경이다.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장수탕 그곳에는 하늘나라에 못 올라간 선녀가 살고 있다. 장수탕에 간 덕지는 선녀와 재미있는 잠수 놀이를 하면서 누구나 경험했을 어린 시절 목욕탕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산업사회에 목욕탕은 갖가지의 사연이 있었다. 물바가지가 부족해 물바가지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이 벌어진 적도 있으며, 여탕에서 머리를 감기 위해 엎드린 아줌마에게 남자 어린이가 똥침을 해 싸움이 났는데 남자 경찰이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라 밖에서 경찰이 “똥침을 당한 아줌마와 똥침을 한 어린이 엄마는 빨리 탕에서 나오시길 바랍니다.” 경찰의 방송을 듣고 목욕탕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한바탕 웃었던 애피소드가 생각이 났다.
이번 목욕탕 부루스 공연은 소극장에서 관객과 소통을 통해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공연으로 소극장 공연이 많아졌으면 한다. 최근, 정책상 공연문화 지원금이 삭감되어 지역공동체가 협찬을 통해 공연이 재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화는 그 나라의 수준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지방에서도 소극장이 활성화 될 수 있는 지원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많은 사람이 대도시로 가려고 하는 것은 문화적인 접근이 가장 높다. 지방에서도 소극장 공연문화가 활성화되어 지역민이 연극을 관람하고 소통하는 공연의 장이 펼쳐지려면 국가와 지방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의식주를 넘어 인문학적인 사고와 철학이 바탕이 되어야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소나기 한차례 휘리릭 내린 뒤 구름이 걷히는 듯하다. 비 오면 나무 그늘에 바람이 들어 한더위 물러갔는데 요즘은 비개인 뒤에도 등줄기에 땀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그래도 한줄기 소나기 쏟아지면 마음속에 맺힌 것이 사라지는 것 같아 후련하다. 퍼붓고 싶은 애환이 있다면 ‘목욕탕 부르스’ 노래에 맞추어 다 쏟아버리고 더 뜨거운 여름을 향해 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