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남도의 무안 들판의 고구마밭이 푸른 잔디를 연상케 한다. 멀지 않아 수확의 기쁨을 맛볼 고구마밭에는 황토색의 짙푸른 줄기들이 힘차게 솟아나고 있다.
끝없이 펼쳐지는 너른 평야와 갯벌을 품은 무안의 땅을 보면서 생명의 용솟음을 만나게 된다.
무안 너른 들에는 사거리 반점이 있다. 시인은 노래하고 주방장은 요리한다. 사거리 반점에서는 짜장면의 구수한 냄새, 짬뽕의 시원한 맛이 나는 요리도 좋지만, 반점에는 시가 있고 낭만이 있다. 시인의 어머니가 그렸다는 그림은 정겨움과 따스함이 묻어나 있다.
사거리 반점은 시가 벽이 되어 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오늘 허기는 너의 이름 하나로 충분하다.’ 조세핀의 시가 손님을 안내한다.
한쪽 벽에는 ‘많이 먹지 말구 맛있게 드세요.’ 라는 문구를 보면서 음식이 나올 때까지 모든 벽면을 보며 시와 삶을 만난다.
이 시 저 시를 보다 김을현 시인의 시를 발견한다. ‘우리 사귈까/ 어떻게/ 넌 꽃으로/ 난 바람으로/ 한 백년쯤/ 들판에서/ 흔들려 볼까’ 시 옆에는 ‘머리에는 지혜가/ 얼굴에는 미소가/ 가슴에는 사랑이/ 손에는 항상 일이 있게 해 주소서.’
현실 앞에 서 있는 우리를 본다. 시인은 서정과 낭만을 노래하지만, 밥벌이라는 현실에 부딪히며 먹고 사는 삶에 봉착한다. 가끔 짬뽕이 생각 날 때면 사거리 반점에 들린다. 그곳에 가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나서 좋다.
시는 몇 단어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게 시가 가지고 있는 언어의 힘이며 감동이다.
이번 사거리 반점에서 한 귀퉁이에 숨어 있는 윤수자 시인의 시를 만나본다. ‘상처는 아물 때가 더 아프다.’ 시집을 낸 윤수자 시인의 시를 찾다가 우리 사회에 쉽게 건드릴 수 없는 한 단면을 보여준 시에 머리가 숙연해진다.
윤수자의 시 나님이다. ‘나님이-문에서 문으로’
‘나님이가 세상을 향해 문을 두드리고/ 망설임 없이 생명 하나 부다/ 남의 헛간이나 허물어진 빈 집터에서/동냥으로 연명하던 나님이가 딸을 낳았다/ “미 친 년”/성은 그렇더라도 이름은 분명하건만/ 모두 그렇게 불렀다/ 마주치면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는 출중한 미모/ 백일이 갓 넘은 아기 머리채를 휘어잡고/ 보자기처럼 들고 다니던 실성한 여자/ 이따금/우체국 나무 계단에 봄 빗줄기처럼/하염없이 앉아 있다가 문득/ “저 문 안에 니 애비 있어야…”/ 검지를 들어 우체국 문을 가리키던 여자/ 직원이래야 국장 포함 단 세 명/그나마/마을 편지 돌리는 꼬맹이 하나/ 신통한 것은 팔아버린 그 정신으로/ 문을 열고 애비를 지적하지 않은 이쁜 나님이/ 누군가 잘못 든 문/ 엉겁결에 자궁문을 열고 튀어나온/ 이름도 못 얻은 아가/ 문이라고 다 여닫으랴/ 흙밭이라고 아무데나 씨앗을 넣으랴/ 시시각각 두려움이 되었을/ 그 남자의 문’
시를 읽다가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시를 조용히 읊어본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숨어 있을 이야기가 시가 되어 우리의 심장을 아프게 두드린다. 시인은 시라는 언어로 세상에 외치고 있다.
시를 쓰는 이도 아프고 읽는 자도 아프고 듣는이도 아프다. 그리고 가장 아팠을 세상의 모든 나님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무안 현경 사거리 반점에는 시를 쓰고 노래하는 시인과 주방장이 산다.
사방 천지에 고구마 밭고 양파밭이 펼쳐진다. 그리고 고구마밭이 펼쳐진 고갯길을 넘으면 바다가 펼쳐진다. 그곳 어디엔가 여류시인이 살고 있다.
세상의 언저리에서 비켜서고 싶은 시인은 노래한다.
늙은이는 시간이 많아 문제고 젊은이는 잠잘 시간도 없어서 힘든 세상이라며 젊은이와 소통하기를 좋아하는 시인은 오늘도 글이 좋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세상을 향해 시를 쓰고 노래한다.
어쩌다 무안 너른 들판을 지나가면 세상의 한 모퉁이에서 시를 쓰는 시인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시인, 세상에 외치는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