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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꽃에서 추억을 찾다
  • 호남매일
  • 등록 2024-08-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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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강한 햇살이 내리쬔 여름날에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가면 그렇게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의 열기도 가라앉았다. 올여름은 소나기 지난 자리에도 햇살은 뜨겁고 공기는 습하다. 뜨거운 태양에 얼굴을 내밀기 두려운 여름날이라 한낮에는 길가에 사람이 없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 집 마당에 붉은 꽃이 지천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 붉게 피어나는 여름꽃은 태양의 열기만큼이나 붉다. 울긋불긋 봉숭아, 담장 밑에 누워 있는 채송화 뒤쪽에 노란, 분홍 분꽃이 활짝 피었다. 소담스럽고 아기자기한 우리의 꽃을 도심에서는 보기 힘들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화단을 지켰던 꽃들은 유럽 꽃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런데 고향 집 마당에 오랜만에 우리의 꽃을 보니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채송화 피었네.” 하며 꽃으로 다가가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봄에는 튜율립, 여름에는 수국, 가을에는 핑크뮬러 등 우리나라 꽃보다는 다른 나라 꽃 축제를 쫓아다녔다.


고향 집 앞마당에 피어난 봉숭아를 보니 어린 시절 봉숭아 물을 손톱에 들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초저녁에 정성스럽게 딴 봉숭아 꽃과 잎, 백분, 비닐, 실을 준비해 봉숭아를 찧어 손가락에 꽃물을 들였다. 낮보다는 밤에 꽃물을 들이는 것은, 밤새 손톱에 꽃물이 잘 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릴 때는 여러 아이와 함께했다.


빠른 정보와 인터넷 세대인 현대의 아이들은 봉숭아 꽃물들이기를 하고 있는가? 궁금해진다. 현장 교사에게 듣는 이야기는 지금의 아이들은 문구점에서 봉숭아 꽃물 가루를 사다 들인다고 한다.


봉숭아 꽃을 찧어 물을 들이고 예쁘게 손톱에 물들기를 기다림의 시간을 갖는 것도 아이에게는 좋은 경험과 아름다운 추억을 안겨 줄 것인데 안타깝다.


봉숭아꽃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상교 시인의 ‘봉숭아 꽃물’ 시가 생각난다. ‘초록 잎사귀 뒤에/수줍게 숨어 있는 봉숭아꽃/ 콩콩 찧어/ 손톱에 물들였더니/ 초록 잎사귀 뒤에 숨던 버릇대로 숨는다./ 손바닥 안에 숨는다./ 열 손톱에 발그레 봉숭아 꽃물’ 봉숭아 꽃물을 들일 때 꼭 잊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첫눈이 올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 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첫 봉숭아꽃이 필 때 꽃물이 들일 것이 아니라 이맘때쯤 꽃물이 들이면 첫눈 올 때까지는 당연히 꽃물이 남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여름 긴 방학 동안 장독대 옆에 줄을 서서 피어난 꽃으로 소꿉놀이, 봉숭아 꽃잎을 정성스레 따다가 꽃물을 들이면 놀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다지 덥지 않은 여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의 더위는 밤에도 습도가 높아 마당에서 꽃물들이기도 힘든 밤이다.


봉숭아 꽃물을 생각하다 보니 채송화, 붕숭아 한쪽에 비름나물도 보인다. 일명 식용맨드라미다.


여름날 비가 오면 어머니는 장독대에 잎줄기를 올린 맨드라미 잎을 따다 부침개를 부쳐 주었다.


여름에는 텃밭에서 가볍게 뜯어와 먹을 수 있는 채소가 많다. 맨드라미, 깻잎과 붉은 고추를 썰어 부쳐 준 부침은 참 맛이 있었다.


다양한 요리로 먹거리를 넘쳐나지만 가끔은 어릴 적 먹었던 음식이 그리 울 때가 있다. 시골의 장독대와 텃밭 사이에 자리 잡은 봉숭아, 맨드라미는 보니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친구들과 놀이를 할 때면 아이들은 장독대로 숨는다. 그때 살짜기 옆에서 웃어주었던 꽃, 맨드라미, 붕숭아, 채송화꽃을 여름의 끝자락에서 만나 본다.


여름의 끝자락에 붉은 깃을 올렸던 맨드라미는 닭벼슬 닮았다. 이에 맨드라미를 계관화(鷄冠花)라고도 한다. 17세기 문사 서계 박세당도 맨드라미꽃을 시로 읊었다고 하니 예로부터 집 마당 장독대 주변에 붉은 꽃을 심어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았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만난 봉숭아, 맨드라미, 채송화를 보니 마당에서 놀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장독대가 있는 곳에 피어났던 정겨운 꽃들은 우연히 길을 가면 반가운 것은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 꽃을 보는 반가움이 아닌가 한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만나보는 우리의 꽃 봉숭아, 맨드라미, 채송화, 분꽃은 우리의 삶과 연관되어 추억이 있는 꽃이다. 시골집 할머니 댁에 놀러 온 손녀는 자신의 키만큼 자란 분꽃의 씨앗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다. 아이의 뽀얀 볼에서 분꽃 향기가 피어나는 여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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