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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 호남매일
  • 등록 2024-10-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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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시를 생각나게 하는 계절이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시를 읽다 보니 올해는 땡볕이 넉 달이나 함께 해 지긋지긋한 여름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만 같아라’ 언어가 절로 나오는 시기다. 경주 다녀오는 길에 합천 해인사로 차를 돌렸다. 잠시 휴식을 위해 거창 휴게소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그동안 무더위가 사람을 지치게 해서인지 푸른 하늘만 보아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합천 해인사 가는 길에 시골길을 지나다 점심시간이 되어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두 농부가 식당에 들어와 막걸리 한 사발을 시키더니 “날이 시원해지니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되네.”라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동안 더위로 처리하지 못한 일들이 시원한 바람이 부니 일이 잘 진행되나 보다 이렇듯, 날씨는 모든 이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생각이 든다.


해인사는 깊은 산골이라 가을이 빨리 온다. 대추가 붉게 익자 장대로 대추를 터는 농민의 손길이 바쁘다. 후두둑 후두둑 푸른 보자기 아래 붉은 대추가 꽃이 되어 떨어진다. 몇 번 털자 푸른 바구니에 대추가 한 아름이다.


푸른 하늘과 푸른 보자기 그리고 붉은 대추의 조화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우리의 가을은 노랑, 빨강, 파랑이 무늬를 다 놓은 것 같다.


합천 해인사를 소리길을 걷는다.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감도 붉게 익어간다. 자연의 섭리는 대단하다. 그렇게 뜨거운 태양을 이기고 수확의 계절로 들어선다. 소리길 따라 걷는 길에 쑥부쟁이가 바람에 산들거리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옆을 살펴보니 담벼락에 양지바른 자리에 까마중(먹떼알)이 보인다. 어릴 적 까마중이 까맣게 익어가면 친구들과 작은 알을 가득 입안에 넣어 후-하 하면 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길을 가다 멈추어서 까마중 몇 개를 손으로 따 입안으로 넣어본다.


입안 가득 퍼지는 맛이 예전 맛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다. 까마중이 익어가는 계절이 되니 불연히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추억에 새삼스레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까마중이 익어가는 계절이면 텃밭의 작물도 거두어들이는 시기가 된다.


이맘때쯤이면 시골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아낙의 손은 쉴 사이가 없다.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고추를 따고 그사이에 집에 들어와 아이들을 깨워 학교에 보내고 들판으로 나간다. 밭에는 사람 손이 들어가야 할 일이 지천이다.


참깨는 잎을 뜯은 후 햇살이 잘 드는 곳에 말려서 털어야 한다. 들깨는 마지막 잎을 따 장을 몇 번 데린 후 먹거리를 위해 저장한 다음, 들깨는 털어서 저장해 둔다.


그리고 짬을 내 호박을 따서 송송 썰어 말려서 저장해 두어야 한다. 어디 그뿐이랴. 고구마도 캐서 저장해 두어야 하며 논고랑 사이사이에 심어 놓은 서리태 콩도 잘 거두어 겨울 동안 안 좋은 것은 잘 골라서 내년 여름에 콩물 국수를 해 먹으면 제맛이다.


가을 들판에 벼가 고개를 숙였다. 이제 며칠 후면 들판이 벼 옷을 훌러덩 벗으며 논과 밭은 휴식기에 들어간다. 휴식기가 없는 들판은 보리, 밀 씨앗이 뿌려질 것이다.


겨울 들판에도 푸르게 하얀 눈을 뒤집어쓴 들판을 생각하니 그 무더웠던 여름이 어느새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다.


가을이 가는 길목에 대추 한 알을 보면 많은 것들이 생각나는 것은 시골에 살았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9월 더위에 겨울준비로 심어두었던 배추, 무가 잘 자라지 못해 채소 가격이 올라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김치 더 주세요.”라는 말도 미안하다. 이맘때쯤, 햇살을 받고 자란 열무로 쌈을 해서 먹으면 제맛인데 아직은 덜 자란 열무 쌈은 좀 더 기다려야 되나 보다.


계절은 가고 열매는 익어가고 벼는 고개를 숙이며 수확을 기다리는 계절에 나는 어떻게 살았는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윤동주 시인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시 한 부분을 읽으며 곡식도 알알이 채워가는 계절에 스스로 질문을 해 본다. 열심히 잘 살았느냐고 깊은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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