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참 어려운 요즘이다. 생산과 소비활동이 위축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세계 경기의 침체로 수출이 둔화되고 내수기반도 약해서 경기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느닷없는 계엄사태로 정치 불확실성이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을 준 것이다.
따라서 경제성장은 탄핵 이후 치러지는 이번 대통령 선거의 가장 큰 화두가 될 것이다. 2%를 밑도는 낮은 성장이 고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1.4%까지 떨어졌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간신히 2.0%를 달성했지만 올해 다시 1%대 초반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은 내년 성장률도 1.8%에 머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시킨 관세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고 있기에 경제성장률이 더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경제 성장 정책이 해법일까?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감안할 때 성장률 제고를 경제정책의 가장 큰 목표로 삼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렇지만 성장률을 높인다고 해서 경기 둔화로 고통을 겪고 있는 많은 국민들의 삶이 자동적으로 나아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꼭 주목해야 하겠다.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최근 들어 낮아지기는 했지만 길게 보면 우리나라는 그동안 정말 빠른 성장을 해왔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1인당 소득수준과 자살률 추이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2010년대 초반까지 국민소득이 늘어나는 데 비례해서 자살률도 동반 상승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선진국들의 모임인 오이씨디(OECD) 국가들 중에서 한국과 미국에서 유독 나타나며 특히 오이씨디 국가들 중 자살률 1위의 불명예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하다.
삶의 만족도를 물어봤을 때 행복하다고 응답한 비율도 우리나라는 2024년 기준 오이씨디 38개
국가들 중에서 33위에 그쳤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소득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던 몇몇 경제학자들은 기본적인 생활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소득수준이 확보되고 나면 기대수명, 비만, 정신병력 등 개인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이나 범죄율, 마약중독 등 각종 사회문제와 같이 사람들의 행복감을 결정하는 요소들은 얼마나 많이 버는가와는 관계가 적어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반면에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도는 그 사회가 얼마나 고르게 잘 사는지를 나타내는 소득분배의 균형도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우리나라는 그동안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세계가 놀라는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했고 절대적인 빈곤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해냈다. 이때는 높은 경제성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시기가 맞다. 그렇지만 IMF 경제위기를 전후로 경제성장의 과실이 국민들에게 고르게 퍼지는 순기능(낙수효과)이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에도 성장률만 높이면 된다는 성장 만능주의 경제정책이 계속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경제성장을 높이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며 시행한 고환율 정책, 부동산 부양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또 불공정 하도급 문제 등에 눈감는 듯했던 공정거래정책, 비정규직을 양산했던 노동시장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라는 명분 아래 실제로는 수출기업, 대기업, 토건업자, 부동산 부자 등 사회의 기득권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면서 양극화가 너무 심해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소득불평등도가 심해져서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바늘 구멍 같은 좋은 일자리를 얻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 어려서부터 성적경쟁, 스펙경쟁에서 헤어날 수 없고, 가까스로 취직해도 언제 잘릴지 모르니 무한경쟁에 내몰린다.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심신은 망가지고 행복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양극화 해소정책으로 방향 전환을 해야한다.
그럼 어떻게 풀어갈까? 이제는 눈앞의 성장률 수치를 올리는 데 집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하겠다.
당장은 성장률을 높이는 효과가 좀 약하더라도 사람들이 골고루 행복할 수 있는 길(양극화 해소)을
가야한다. 즉 단기 성장률을 올리는 데 치우친 경제정책은 그만 폐기하고, 기업이 망하면 우리나라도
망한다며 불공정행위에 대해서까지 관용을 베풀지 말고, 경제성장에 방해가 되니 취약자 보호와 지원은 나중에 하자는 주장도 접고, 양극화를 줄이는 쪽으로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소득분배에 초점을 맞추면 경제성장률이 낮아진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최근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많은 국제기구에서도 소득분배의 개선이 그 나라의 중장기 경제성장률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분배의 악화로 사회적 갈등이 심한 나라일수록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서 기업들이 중장기 투자계획에 소극적이고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의 소비수요 또한 부진한 반면 분배가 개선되면 사회 구성원의 사기, 팀워크, 상호신뢰 등 통합성이 높아지면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축적되어 총요소생산성이 높아짐에 따라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득분배를 비롯한 주요 경제문제는 결국 올바른 정책으로 풀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좋은 대통령, 좋은 국회의원, 좋은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을 뽑아야 한다.
경제관료들은 대부분 시키는 대로만 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조건 개발해서 성장률을 높이고 다 부자 만들어주겠다는 입에 발린 말만 하는 정치인은 뽑지 말고,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고르게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치인을 우리 손으로 뽑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험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경제 문제는 결국 정치 문제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살기 위해
먹는 것이지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라는 점, 즉 경제성장은 애초부터 행복하기 위한 수단이었지
목적이 아니었다는 출발점,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