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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지 호남매일신문_기고] 남도의 오월, 심장이 뛴다.
  • 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
  • 등록 2025-06-07 00:13:26
  • 수정 2025-06-07 00: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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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우석대학교 국어국문학 박사

ㆍ현 대동문화재단 대표이사

ㆍ현 광주충장축제위원장

ㆍ인문학 전문강사

ㆍ유튜브 <조상열의 입문학수다> 운영

ㆍ대통령상 수상

ㆍ세종문화상 수훈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이산 저산 만개한 남도의 꽃, 질퍽한 남도의 갯벌 등은 남도의 독특한 색깔이다. 사월 오월 봄이면 남도 땅은 한 폭의 거대한 자연박물관이자, 수채화이다. 특히 ‘오월’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자연적 봄의 빛깔을 넘어서서, 남도 사람들의 심장을 뜨겁게 뛰게 하는 남도의 고유 언어이다. 때문에 어떤 사람은 “남도의 봄빛을 보지 않은 자는 남도의 색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고 한 말속에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고 여겨진다. 시인 피천득은 오월을 다음의 시로 읊었다.


창밖은 오월인데 

너는 미적분을 풀고 있다.

그림을 그리기에도 아까운 순간

 

라일락 향기 짙어 가는데

너는 아직 모르나 보다

잎사귀 모양이 심장인 것을

 

산과 들, 도심의 가로수마다 온갖 꽃이 만개한 오월이다.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가정의 달이기도 한 오월은 해마다 찾아오건만, 오월을 맞는 느낌은 저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오월엔 순백의 하얀 꽃이 오지게 피어난다. 이팝나무, 찔레꽃, 산딸기꽃, 불두화, 물푸레, 층층이, 아카시아, 때죽나무, 하얀 목련들은 가신님들 고이 보내 드리려는 눈물 꽃인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진달래에 이어 철쭉, 작약, 모란, 양귀비, 라일락, 튤립, 장미, 접시꽃, 제비꽃 등 붉은 꽃들은 오월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쓰러져간 영령들의 불타는 심장이 산화(散花)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림 그리기에도 아까운 아름다운 봄날. 그리움도, 슬픔도, 한(恨)도, 아쉬운 사연도 많은 시절이 덧없이 가고 있다. 허나 봄인지 여름인지 알 수 없는 이상기온, 강한 바람, 불청객인 황사와 미세먼지까지 극성을 부려대는 요즘엔 가슴 가슴마다 봄날의 향연과 서정(抒情)이 몽글거리기란 쉽지 않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뛰놀았던 세대는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인 <향수>에서 그 아련함과 절절함으로 젖어 든다.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 얼룩백이 황소가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졸졸 흐르는 실개천, 풀을 뜯던 배부른 황소의 느려빠진 울음소리, 얼굴을 간지럽히는 훈훈한 봄바람. 눈을 감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미소짓는 소확행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봄이 되면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 ‘봄날은 간다’. 음치들도 한 대목 정도는 읊조리는 애수(哀愁)의 노래다. 


노래가 나온 지 7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즐겨 불리는 불후의 명곡이다. 우리나라 시인 100여 명은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국민 최고의 애창곡으로 꼽았다. 봄날에 대한 노래 중 이처럼 애절한 사랑과 슬픔을 묘사한 노래는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노래는 ‘귀국선’과 ‘고향의 그림’ 등 대표적 작사자인 손로원이 쓴 시에 박시춘이 작곡을 했고, 백설희가 불렀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고, 국민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했던 노랫말이다. “따스한 봄날 연분홍 치마, 새파란 풀잎,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길,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에 열아홉 순정의 애절한 사랑과 슬픔을 그려낸 것으로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최백호, 장사익, 한영애, 심수봉, 조용필, 이미자 등 기라성 같은 가수들이 애창해 왔고, 2001년에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가 개봉돼 다시 한 번 주목을 끌기도 했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가사 중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부분은 눈물을 글썽거리게 한다. 봄날을 슬프게 하는 대표적인 것이 또 있다. 


 진달래와 두견새이다. 천상의 선녀가 지상의 꽃을 보러왔다가 나무꾼 진씨와 인연이 되어 둘은 결혼을 했고, 달래라는 딸을 얻었다. 세월이 흘러 선녀는 천상으로 돌아가고 진씨와 달래 부녀만 살았다. 고을 사또가 달래를 첩실로 삼으려다 거절당하자, 사또는 달래를 처형을 했고, 이어 진씨도 달래의 시신을 안고 죽고 말았다. 이때 갑자기 달래의 시신은 사라지고, 하늘에서는 붉은 꽃송이가 쏟아져 내려와 진씨의 시신을 꽃무덤으로 만들었다. 이후로 해마다 봄날이면 무덤에 붉은 꽃이 피었는데, 이를 진달래꽃이라고 불렀다는 슬픈 전설이다. 


동양 문화에서 두견새는 원한과 슬픔의 상징으로 여긴다. 옛 중국의 촉나라에 망제라는 임금이 왕위에서 쫓겨나 객사를 하고 만다. 억울하게 죽은 망제의 넋은 두견새로 변하여 밤낮으로 고향을 그리며 ‘귀촉(歸蜀)귀촉’하고 울었다 하여 귀촉새라고도 한다. 맺힌 한으로 피를 토하며 울고, 토한 피를 다시 마시고 목을 적시며 울던 두견새. 슬픈 진달래만 보면 핏빛을 토해 울면서 꽃잎도 물들게 했다. 


이런 이유로 진달래꽃을 두견화라고도 하고 또 접동새를 일명 두견새라고도 한다. “진달래 피고 새가 울면은 두고두고 그리운 사람~”이란 노래를 절로 흥얼거리는 이유는 누군가에 대한 애상(哀傷)의 표현이다. 


떠난 사람은 못내 그립고, 가족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사연 많은 오월의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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