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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의 마음이 하늘의 뜻이라면, 국민의 행동이 답이다”
  • 정성욱 목포농협 용해지점장
  • 등록 2026-03-12 10:04:12
  • 수정 2026-03-12 10: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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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욱 목포농협 용해지점장


설날이 지나고 대지를 은은하게 밝히는 정월대보름이 다가온다. 예로부터 정월대보름은 단순히 달이 가장 둥글게 차오르는 날이 아니라, 우리 농업인들이 하늘에 풍년을 기원하고 땅의 숨결을 살피며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다잡던 소중한 약속의 시간이었다. 오곡밥을 나누고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던 풍습에는 ‘함께 하는 농촌’의 가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의 흐름 속에서 이러한 풍경은 점차 희미해지고, 농촌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올겨울은 유난히도 길고 매서웠다. 폭설과 한파가 반복되었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봄을 향해 나아간다. 논두렁과 밭고랑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속에서 농업인들은 다시 한 해 농사를 준비한다. 겨우내 창고에 넣어두었던 농기구를 꺼내 기름칠을 하고, 고장 난 곳을 손보며 파종 시기를 가늠하는 모습은 해마다 반복되는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그 풍경 뒤에 놓인 농업인의 어깨는 해마다 더 무거워지고 있다. 지금의 농촌은 비료나 종자보다도 더 절실한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이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농번기(4~6월, 9~10월) 농촌의 전체 노동 수요는 약 1,450만 명분에 이르지만, 실제로 확보 가능한 인력은 그 절반 수준인 약 700만 명분에 그친다. 이 가운데 약 400만 명분은 외국인 계절근로자와 국내 일손 지원 인력으로 충당할 계획이며, 나머지는 농촌 일자리 중개센터와 지역 자원을 통해 메워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농촌의 일손 부족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위기임을 보여준다.


농촌 고령화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농번기가 되면 하루 이틀 일손을 구하지 못해 애써 키운 농작물을 제때 수확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허리가 굽고 무릎이 성하지 않아도 어르신 농업인들은 밭으로, 논으로 향한다. 하지만 체력은 예전 같지 않다. 과거에는 가족과 이웃이 함께 나서 품앗이로 해결했을 일이지만, 지금은 마을에서 젊은이를 찾기 어렵다.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산업임에도, 노동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것이 오늘 농촌의 냉혹한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농협이 지난해 창립 64주년을 맞아 선언한 ‘농심천심(農心天心)’ 운동은 우리 사회에 다시 한 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농민의 마음이 하늘의 뜻”이라는 이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국민 모두의 삶과 다시 연결하겠다는 다짐이다. 농업인이 흘리는 땀 한 방울, 새벽부터 밭을 지키는 정성은 결국 국민 식탁의 안전과 직결된다. 농촌이 살아야 나라의 뿌리가 튼튼해진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농협은 농촌 일손 돕기 운동과 영농 지원 인력 운영, 농작업 대행 서비스 등 다양한 노력을 이어왔다. 많은 시민과 기관이 농번기마다 농촌을 찾아 흘리는 구슬땀은 농업인들에게 큰 힘이 되어왔다. 그러나 자원봉사만으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보다 체계적인 참여와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러한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 역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정부는 내년에 농업·어업·임업 분야에서 약 10만 명이 넘는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도입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는 농촌 현장의 숨통을 틔우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동시에 비자 발급 절차, 노동 환경, 인권 보호 등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외국인 노동력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장기적인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이제 농촌 일손 돕기는 선택적인 봉사를 넘어, 우리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공동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루만 농촌으로 발걸음을 옮겨도 농업인에게는 며칠의 여유가 생기고, 한 해 농사의 성패가 달라질 수 있다. 직접 흙을 만지고 작물을 수확해 본 경험은 농산물의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고, 우리가 먹는 한 끼에 얼마나 많은 땀과 시간이 스며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한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도움’을 넘어 농업과 국민을 다시 잇는 소중한 연결고리가 된다.

 

아울러 이러한 참여가 농업인에게 실질적인 혜택으로 돌아가도록 제도적 뒷받침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참여자에게는 봉사 시간 인정이나 생산 농산물 제공 등 동기를 부여하고, 농업인에게는 작업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청년과 도시민이 농촌을 일시적으로 찾는 데서 그치지 않고,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할 수 있도록 주거와 소득, 교육 여건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농업과 농촌을 바라보는 국민적 인식의 변화다. 농심천심 운동이 지향하듯, 농업인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국민에게는 편익이 되는 행동이 쌓일 때 농촌은 다시 희망의 공간이 될 수 있다. 농업은 결코 낡은 산업이 아니라, 생명과 환경을 지키는 가장 근본적인 일이며 우리 모두의 미래와 맞닿아 있는 가치 있는 영역이다.

 

정월대보름의 달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 땅을 비춘다. 달을 바라보며 풍년을 기원하던 농업인의 마음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다만 그 마음을 지켜줄 사회의 손길이 더 절실해졌을 뿐이다. 농심천심이라는 이름 아래,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농촌을 향해 내미는 손길이 모일 때 우리 농촌은 다시 살아 숨 쉬게 될 것이다. 보름달처럼 환한 희망이 농촌 들녘에 가득 차오르기를, 그리고 그 길에 농업인과 국민 모두가 함께 동행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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