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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원 광주상공회의소 회장 |
오늘날 대한민국은 ‘수도권 일극 체제’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빠져 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들고, 자본과 기회 역시 그곳으로만 향한다. 지방은 소멸의 공포 앞에 서 있고, 국가의 지속가능성은 위협받고 있다.
우리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수많은 대책을 내놓았으나, 정작 산업의 혈액이라 불리는 ‘에너지’의 불균형 문제는 오랜 시간 외면해 왔다. 필자는 그 해결의 실마리를 ‘산업용 전기요금 지역별 차등제’의 조속한 시행에서 찾고자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력 공급 체계는 지극히 기형적이고 불합리하다. 대한민국 발전설비의 약 75% 이상은 비수도권 지방에 위치해 있다. 원자력, 화력, 신재생에너지를 막론하고 대규모 발전 시설은 예외 없이 지방의 해안가나 외곽 지역에 건설된다. 반면, 이렇게 생산된 전력의 약 40%는 수도권에서 소비된다. 지방의 희생으로 생산된 전기를 초고압 송전망에 실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수도권으로 실어 나르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경제적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장거리 송배전에 따른 전력 손실률은 매년 3~4% 수준에 달하며,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해마다 수천억 원의 혈세가 공중에 뿌려지는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거대한 송전탑과 초고압 선로를 구축하기 위해 투입되는 건설 비용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역 주민과의 갈등, 환경 파괴 등 ‘사회적 비용’은 수치로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발전소는 지방에 두고 혜택은 수도권이 독점하는, 이른바 ‘발전과 소비의 미스매치’가 대한민국 경제의 기초 체력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국의 전기요금은 단일 체계로 묶여 있다. 발전소 바로 옆 산업단지에서 전기를 사용하는 기업이나, 수조 원의 계통 비용과 송배전 손실을 발생시키며 수도권 중심부에서 전기를 사용하는 기업이나 똑같은 가격을 지불한다. 이는 전력 공급에 들어가는 실질적인 비용을 요금에 반영해야 한다는 ‘원가주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현재의 요금 체계는 사실상 지방의 기업들이 수도권 기업의 송전 비용을 대신 분담해주고 있는 ‘역차별적 구조’다. 발전 시설을 수용하며 온갖 환경적·행정적 규제를 견뎌온 지역민과 지역 기업들에게 합리적인 보상은커녕, 오히려 보이지 않는 비용까지 전가되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에너지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전력을 생산하는 지역에서 전기를 우선 소비하고 그에 따른 경제적 혜택을 누리는 ‘지산지소(地産地消)’형 에너지 선순환 구조로의 대전환이 시급한 이유다.
필자는 지방의 산업용 전기요금을 수도권보다 최소 10~15%가량 저렴하게 책정할 것을 제안한다. 현재 산업용 전기요금이 kWh당 180원대임을 감안할 때, 지방 기업이 150~160원 수준의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다면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다. 막대한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이 생긴다면, 기업들은 정부의 권고나 애국심에 호소하지 않아도 스스로 지방 산업단지로 발길을 돌릴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기업을 지방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시장 친화적이고도 실질적인 유인책이다.
혹자는 지역별 차등제가 시장의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미국, 영국, 호주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송전 거리와 전력 계통의 혼잡도를 반영한 ‘지역별 차등 요금제(Locational Marginal Pricing)’를 운영하고 있다.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가 멀수록 더 많은 계통 운영 비용을 부담하게 함으로써 전력망의 효율성을 높이고, 전력 수요를 발전소 인근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수도권 일극 집중’을 겪고 있으며, 이러한 과도한 쏠림으로 인해 전력 계통 운영은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다. 이제 우리도 전력의 생산과 소비를 지역 단위로 일치시키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요금 체계를 개편하고, 이를 통해 지방 산업단지의 입지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기업이 내려오면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청년들이 고향에 머물며 결혼과 출산을 꿈꿀 수 있는 ‘선순환의 물꼬’를 틀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산업용 전기요금 지역별 차등제는 지역 경제를 살리는 것을 넘어, 국가적 난제인 저출산과 인구 절벽 문제를 해결할 가장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처방이 될 것이다.
다행히 정부도 최근 산업용 전기 지역 차등제 도입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제도 도입의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들이 믿고 움직일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로드맵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상징적인 수준의 할인이 아니라, 기업의 입지 선택을 바꿀 수 있는 실질적인 요금 격차를 설계해야 한다.
산업용 전기요금 지역별 차등제는 단순히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는 요구가 아니다. 이것은 뒤틀린 국가 전력망을 바로잡는 구조 개혁이자, 소멸해가는 지방에 산소호흡기를 부착하는 긴급 처방이다. 지방이 살아야 국가가 살고, 균형 잡힌 국토가 국력이 되는 시대다. 대한민국이 소멸의 위기를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가는 그 위대한 여정의 시작은, 바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에너지 요금’을 확립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정부의 담대한 결단과 조속한 시행을 강력히 촉구한다.